연세대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고 들뜬 기분으로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독사반으로 배정되셨습니다. 오티가 있으니 대강당 앞으로 오시면 깃발 보이실 거에요. 그 때 뵐게요.”

대학에는 과밖에 없고, 그 안에서 학생들만의 자체적인 조직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던 때였다.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는 대학에 왜 ‘반’이 있는 것인지, 얼떨떨해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독서반’으로 들어서, 학교에서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따로 공부를 시키는 스터디 모임을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 정도만 했다. 그러나 나는 곧 학생들 사이에서 ‘반’이라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꾸려서 함께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반’은 지난 1997년을 기점으로 대학의 체계가 학과제에서 학부제로 변화하면서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새내기들의 소속이 ‘~~학부’로 바뀌면서 과를 받지 못한 새내기들이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방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기존의 학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반’을 만들고 새내기들을 무작위로 섞어서 반에 배정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아는 것도 없는 오티에서부터  우연으로 만난 반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은 대학생활 동안 많든 적든 서로에게 큰 영향을 줘왔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흐름 지금 각자가 나름의 문화와 1년의 주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소속되는 ‘반’이라는 공동체는 그 안의 사람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터전이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렇지만 지난 2008년부터 학부제가 다시 오는 2010년에 학과제로 변화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소문은 진실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상경대와 몇몇 단과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단과대에서 학생체제 전반에 변화가 오는 또 다른 사건이었다. 단과대마다 상황이 달랐지만, 분명한 것은 과에서 반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보다 다시 과로 돌아가니 반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상황이 더 어려웠다. 특히 문과대의 경우에는 11개의 반과 10개의 과가 있어서, 그 상황은 복잡했다. 반에게도, 과에게도 학과제 전환은 엄청난 일이었다. 문과대는 학생회의 모든 활동이 반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반대로 97년 이후로 과학생회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필요에 의해서 몇몇 과에서 다시 살아났을 뿐, 그 역량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결국 모두의 위기의식 속에서 2008년에는 과반연석회의가 열리기 시작했고, 2009년에 과와 반의 연계를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2009년 연계의 논의도 정리가 돼 가고, 2010년의 새로운 학생회를 세워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문과대의 반과 과들은 연합학생회를 세우고 함께 2010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2008년 후반부터 2009년까지 약 1년 반 동안의 논의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했지만, 각자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그 속에서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가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분명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되는 일임에도 그 논의는 문과대 학생회를 중심으로 각 단위의 학생회장단 사이에서의 논의 이상으로 이끌어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대부분의 논의가 마무리 됐고, 연합학생회라는 큰 틀에서 각자의 상을 세워가고 있지만, 크고 작은 불만들이 각 공동체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010년 학생회 체제의 논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에 대해서 새로운 상상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과대 논의에서 큰 쟁점이자 주장은 그동안 반에서 해오던 행사들을 과에서 할 수 없고, 과에서 해오던 행사들은 반에서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과 안에서는 학생회가 전체 학생들을 대표하는 독립적인 조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2010년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일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보고,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대학교에 입학할 10학번, 11학번들에게도 소중한 대학의 추억을 만들어 줄 있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들뜬 마음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시작할 10학번, 11학번, 12학번, 13학번 들에게도 소중한 대학의 추억을 만들어 줄 있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박설아(사학ㆍ07)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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