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엇이든 둘로 나뉜다. 산과 바다, 낮과 밤, 선생과 학생, 의사와 환자 등. 취재원도 마찬가지다. 기자를 반가워하는 취재원과 불편해하는 취재원, 극명히 다른 둘이 존재한다. 그래서 특정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취재원을 만나야 하는 사회부의 특성상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취재의 난이도가 결정된다. 우선,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취재원들은 너무나도 열성적으로 취재에 응한다. 기자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관련 자료를 전해주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지난 1619호 ‘단돈 몇 백원짜리 귀마개가 없어서…’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군 이명 피해자들은 흔쾌히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취재를 도와줬다. 이명 때문에 해고를 당해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었고 제대로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속사정까지 말해줬다. 군대에서 얻어 온 병을 몰라주는 국가가 너무나 야속한 마음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려 기자를 붙잡고 또 붙잡았다. 반면 기자를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문제의식의 화살표가 자신에게 향한 취재원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갈까 봐, 자신의 잘못을 꼬집는 기사가 나갈까 봐 취재요청 조차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렵게 취재를 하더라도 각 질문마다 변명하기 급급한 모습만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취재원이 중요하다지만 그들의 역할은 취재로 끝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도 기자가 취재내용을 잘 정리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없다. 극과 극의 취재원을 모두 포용하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며 올바른 비판의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취재원 때문에 기사의 가치가 좌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취재원의 인터뷰 내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가 별로라는 것은 단지 변명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취재원을 만나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자신의 주관으로 취재를 진행하고 기사를 적어내는 사람이 진짜 기자다.

사회부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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