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9월까지. 거의 200일 동안 지구에 붙은 11개 나라를 둘러보고 왔다. 태국을 시작으로 동남아, 인도, 중동을 거쳐 스페인까지. 보이는 게 모래뿐인 시리아 사막에서부터 매일 아침 고소한 바게트가 쏟아져 나오는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 거리로만 족히 2만 킬로미터, 여권에 찍힌 도장, 26개,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 3천 장. 그렇게 내 200일 여행은 작은 흔적들로 내 삶에 스며들고 있다.

여행을 결정할 당시 나는 [경제 침체가 휩쓸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 안 간 삼수생 학부 1학년 재학생]이었고 그 꼬리표가 던져주는 압박감에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 가고 있었다. 세상 업을 다 짊어진 마냥. 그 와중 내 머릿속엔 ‘일탈=여행’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 비행기 표와 달러를 왕창 사버렸다.

인천 공항에서 가족과 마지막 통화를 끝낸 후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 마냥 즐거울 거로만 생각했던 여행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전쟁 그 자체였다. 라오스 국경에선 내 모든 짐을 가진 버스가 나를 두고 떠나는가 하면, 시리아에선 버스가 퍼져버려 사막에서 2시간을 걸어야 했고, 인도에선 밤이 되어도 38도 밑으로 내려갈 기미가 안 보이는 더위 속에서 장염, 위염, 일사, 빈대물림에 동시에 대응해야만 했다. 설사와 구토에 간지러움과 식은땀까지.

물론 여행은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장관이 내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고, 숙소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의 스파게티나 마드리드에서 마신 딸기 마가리타의 맛은 내 입맛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산티아고 순례자 길에서 만나는 순례자들과 걷기의 고통, 때제에서 보았던 은하수와 별똥별, 베트남 콘툼에서 한 달을 같이 보낸 빈쑨 식구들까지. 그 모든 감사함과 행복을 떠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모든 역동의 순간이 끝나고 나는 현재 한국에 있다. 여행 후 최초의 만남에선 누군가 됐든 제일 먼저 여행에 대해 묻는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그리고 뭐를 배웠냐고. 혹은 남은 게 뭐냐고. 나는 두 물음에 매번 고민을 한다. 그리곤 항상 내 스스로 성에 차지 않는 답을 한다. 어디가 제일 좋았을까. 어쩌면 답은 인천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일 거다. 어느 한 곳 포기하고 싶은 데가 없으니 말이다.

무엇을 배웠을까. 혹은 어떤 게 남았을까. 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난 누나와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둘이서 만들어낸 답안은 ‘경제적으론 그다지, 그래도 세상 살아가면서는 조금씩 도움 줄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그 이상 모범답압은 없지 싶다. 적어도 내게 남은 건 아무도 나만큼 느끼질 못할 나만의 이야기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살이 10kg정도 빠진 정도?

내 삶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 경제 침체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조금씩 보이는 대한민국 군대 안 간 삼수생 학부 2학년 휴학생이다. 여전히 나를 짓누르는 이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않다. 복학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일상에 치어야 하고 적잖은 스트레스들이 나를 누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젠 즐기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가고 있으니까. 여행이 내게 준 게 이런 걸까? 그리고 아무튼 다행이다. 아직까진 빠진 몸무게가 그대로라서.

이태경 (사학·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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