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평가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이야기

지난 봄 학기가 끝난 후 기원이는 성적표를 받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B학점 이상은 나오겠거니 생각했던 한 과목에서 C+학점을 받은 것이다. 시험도 잘 봤고 과제도 충실히 제출 했던터라 그 충격이 더 컸다. 의구심을 가진 기원이는 당장 교수님을 찾아가 성적을 확인했다. 그 결과 자신의 성적이 C학점과 B학점 사이에 위치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 C학점대 1등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단 0.5점 차이로. 기원이는 아쉬움에 눈물을 머금고 재수강이 가능한 D학점으로 내려달라고 교수에게 요청했다.
이렇게 상대평가 제도로 인해 ‘피 본’ 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게 된 것은 학점대마다 비율을 정해 놓은 상대평가 때문이다.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이 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거꾸로 추적해본 상대평가 제도

상대평가는 1970년대에도 학칙에 명시돼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래된 제도다. 지난 2005학년도 자료에 따르면 A·B학점의 비율이 전체의 65%였으나 현재는 70%로 상향 조정돼 실시하고 있다. 상대평가는 개인의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의 성적과 비교해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다른 학생과의 경쟁 구도 내에서 성적 평가가 이뤄지는 제도다. 우리대학교 학사지원팀 김영숙 팀장은 “대학 내 성적 평가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도 구축’이 상대평가가 대학에 도입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에서 대학을 평가할 때 성적평가의 신뢰도와 투명도를 많이 고려하는 편”이라며 “그런 점을 충족시키기 위해 상대평가가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외에 다른 요인도 있다. 교수평가권에 대한 불신이 그것이다. 절대평가의 경우 교수는 자율적으로 학생들에게 성적을 부여할 수 있다. 그로인해 초래된 학점 인플레 현상을 막기 위해 상대평가 제도를 도입한 대학들이 많다.


동료들을 적으로 만드는 상대평가의 맹점

이런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불만은 이 상대평가 제도의 이면에 있는 ‘경쟁 구도’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 상대 평가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나성채(교육·09)씨는 “협동을 통해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절대평가에 비해 상대평가는 지나치게 경쟁을 조장한다”며 “협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가 많지만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대평가 제도 안에서는 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교수들은 ‘조모임’을 통해 협동이 부족한 상대평가의 맹점을 보완하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진정한 의미의 협동을 이루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또한 상대평가는 학생들의 학습 열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대평가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다는 김인섭(경제·07)씨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위권에 속하는 A·B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중간시험을 망치면 다음 수업에 대한 열의가 저하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접 성적을 평가하는 교수들도 학생들과 입장은 다르지만 불만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8학년도 2학기 인문한문 과목을 강의한 전송렬(문과대·국문학)교수는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면 모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으나 정해져 있는 비율이 있어 항상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교수들은 교수의 평가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며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은 한 교수는 “점점 상대평가가 대학 사회에서 보편화되면서 교수들의 재량이 적어지고 있는 것이 굉장히 아쉽다”며 ”상대평가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까지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교수들이 상대평가 때문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방식을 도입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수치로 평가 가능한 시험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불가능한 다른 방식의 수업이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젠 불만보다 고민을 할 때

이런 학생들과 교수들의 불만이 학기마다 학사지원팀에 적지 않게 들어온다. 이런 불만을 두고 김 팀장은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불만은 이해가지만 학교 차원의 객관적인 기준은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상대평가와 관련해 들어오는 불만들을 보면 교수나 학생들 모두의 이기심이 발현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은 개인 성적, 교수는 학생들의 성적 관련 문의 때문에 상대평가에 단순히 불만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 더 제도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호 기자 phillies@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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