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개월 전 중도 앞 민주광장 바닥에 누군가에 의해 ‘초 중고생보다도 못한 대학생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문구가 쓰여진 일이 있었다. 아마도 시국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메시지였겠지만, 물끄러미 글을 보다가 떠오르는 다른 생각에 쓴 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쯤 전에 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학술정보관 옥상 카페테리아 건설 이후 운영에 대한 우려 섞인 의견들을 보며 그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 이용에 만연한 외부비경제

경제학에는 외부성에 대한 분석으로 ‘외부비경제’ 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사람의 악의 없는 소비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는 비용을 강요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사람이 많은 혼잡한 버스정류장에서의 흡연 등이 외부비경제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외부비경제는 도서관에서도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다. 도서관 깊숙이 앉아있어도 들리는 로비의 커다란 잡담소리, 주변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큰 볼륨으로 음악 감상에 몰두하는 사람, 전화를 받으러 뛰어나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아예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 세미나실에서 조모임을 하며 바깥에 다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로비에 나뒹구는 버려진 좌석 배치표와 쓰레기들까지.

이렇듯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마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행동들이 도서관 전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참다 못해 직접 불편을 호소해서 바로잡아보려고 해보기도 하지만 바로 그때뿐이다. 이러한 가운데 학술정보관 옥상에 카페테리아가 건설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환영과 함께 우려를 쏟아내었다. 휴식을 취하거나 간단한 식 음료를 즐기기 위해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았다. 하지만 카페테리아 이용객들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진 않을까, 음식을 들고 열람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도서관을 혼잡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 또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카페테리아가 문을 열자 두 가지 상반된 기대는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보통 이러한 외부비경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제도의 개입이 논의된다. 강제력과 공신력을 갖춘 기관이 과다소비의 한계비용을 증가시키기 위한 일련의 제약을 가하여 과다소비를 억제하고 후생손실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는 잡담-통화 금지 구역을 설정한다든지, 열람실 내 음식물 섭취를 금지한다든지 하여 제도적으로 학습환경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카페테리아의 운영에는 학우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 쓰레기 투척 방지를 당부하는 글을 게시한다든지 즉석에서 커피를 마시려는 학우에겐 머그컵 사용을 권장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항상 의도한 그대로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비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일정 부분 이러한 제도의 개입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강제아닌 자율적 배려 필요해

그러나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대학생들이 어찌하여 이런 제도의 개입과 외부의 강제가 있어야만 자신들이 창출해내고 있는 외부비경제를 줄일 수 있는 지경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외부비경제의 정의에 따르면 비경제를 초래하는 소비에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없다. 우리들의 소비로 인해 타인에게 강요될 비용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과다소비를 일으키고 비경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짚어보면, 소비집단 스스로가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노력으로써 외부비경제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비효용을 효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의 개입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다름아닌 우리 모두가 치러내야 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접근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외에 각자가 조금씩만 더 자기 자신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학습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주 (경영·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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