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머릿속,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중일 수 있다

어떠한 조직이든 처음 조직에 속하게 되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 교육’을 받을지 모른다. 대표적인 예로 군대에서의 주적론 교육과 역사 교과서를 통한 왜곡된 역사 사상 교육 그리고 회사에 입사시 신입사원 교육을 통한 신념 교육 등이 있다. 그런데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대학에서도 이런 신념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머릿속이 ‘공사중’일지 모른다.

선배, 그게 정말 그런겁니까?

백양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군가요?” 이중 80%가 반 선배, 학과 선배라고 답했다. 특히 학번이 낮을수록, 유대가 강한 반일수록 반 선배와의 관계도 긴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 선?후배간의 유대가 좋기로 소문난 공과대(아래 공대)에서는 실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학기 공대 모 반에서는 반회장의 강압에 이기지 못하고 많은 반 구성원들이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반회장은 반구성원들보다 나이가 많아 회장에 선출됐고 그 권력을 이용해 자유로웠던 반을 나이 중심의 수직적인 구조로 만들어버린 것. 이를 통해 그 회장은 반 행사의 참석과 자기 위주의 반 운영을 강요했다. 처음에는 이런 회장의 행동이 카리스마있고 결단력있게 보였다. 그러나 점점 그 도가 지나치게 되고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은 점점 반을 떠나게 됐다. 이 때문에 와해됐던 반은 다음 학기에 새로운 회장이 뽑힌 뒤에야 정상화 될 수 있었다.
공대 뿐만이 아니다. 다른 단과대에서도 유대가 강한 반이나 과의 경우 비슷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엠티나 반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남?녀의 역할을 선배들이 규정지어 버렸다. 남자 학우들은 짐을 나르고 여자 학우들은 식사를 준비한다는 식의 고정적인 성역할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요하고 좀더 여성적인 학생에게 대우를 해주는 악습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선배들의 대우를 받기 위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좀더 여성성이 강조된 행동과 의복을 갖추게 되는 경향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총여학생회나 여러 학내 단체에서 문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쳐지고 있지 않고 있는 문제다. 김아무개(인문계열?09)씨는 “대학 경험이 많은 선배를 일정부분 존중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사상 때문에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와 같은 사례는 선배들과 친한 후배나 선배들의 참여가 많은 반에 있는 학생들에게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선배들과 교류가 많을수록 그들이 주입시키는 사상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지기 때문에 유대와 협동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스럽게 생각에 대한 통제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교수님, 수업은 유세장이 아닙니다

강의를 듣다 교수의 발언으로 인해 불편해본 경험이 있는가? 실제로 우리대학교에도 수업시간을 마치 자신의 신념 선전의 장인 것처럼 활용하는 교수들이 있다.
경영대의 모 교수의 경우 수업시간에 기업친화적인 자신의 경제철학을 끊임없이 발언한다. 또한 이슈가 된 경제 현안에 대해서 많은 사회적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현 정부의 정책을 옹호한다. 이 수업을 들었던 김아무개(23)씨는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동조를 얻기 위해 박수를 치라고 수업 시간마다 말하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위의 교수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대의 모 교수는 수업시간마다 연세인이라는 자긍심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시험문제로 우리대학교의 교훈을 내기도 하고 우리대학교의 슬로건인 ‘The First & The Best’을 말하지 않은 시간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 수업은 1천단위 교양강좌라 주 수강 층이 신입생들이다. 따라서 학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신입생들은 아무런 여과없이 그 교수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 결국 지나치게 높은 자긍심이 자연스레 개인 사상에 주입되게 돼 버린다.
김씨는 “여러 사상을 두루 접하면서 신념적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이런 수업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기독교 ‘대학’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기독교 대학’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입학할 당시 종교에 대한 부분은 설문지 한장 작성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막상 입학을 하고 나면 채플이나 학부 기초 과목으로 설정돼 있는 기독교의 이해 과목들로 인해 당황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번 2009학년도 09학번 신입생을 대상으로 학부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전체 학생의 47%고 나머지 53%의 종교가 없는 학생과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의 비율로 나타났다.
그러나 절반이 넘는 비기독교인의 종교적, 신념적 자유를 무시한 몇몇 기독교 교육과정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2~3명의 ‘기독교의 이해’과목 담당교수의 경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반을 따로 수강신청을 받고 있다. 이에 ‘기독교 이해’과목을 듣고자 했던 비기독교인 학생들은 종교에 따라 분반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교목실 박정세 실장은 “기독교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좀더 심화적인 내용을 공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반을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입학 전형에서 종교에 관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면서 기독교를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비기독교 학생들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대학은 자유를 꿈꿔야 한다

12년의 공부와 행동에 강요와 제약을 받으며 살아온 학생들이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를 가진 대학에서조차 학내 단체들과 조직에서 여러 측면에서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대학생들에게 사상과 강요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외압을 떨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종호 기자 phillie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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