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이트 접속과 엑셀파일 클릭, 자기 이름 찾기로 끝났다. 그뿐이었다. 지난날의 노력과 고통, 인내는 그저 내 이름 발견 여부로 평가받는 것이다. 오늘은 제44회 공인회계사 2차 시험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주변에서 합격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나 역시 6개월째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으로서, 다음 시험 때는 내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지 사뭇 긴장되는 날이었다.

요즘 고시 풍경은 학교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중앙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보는 많은 학생들, 학교의 고시합격 축하 현수막, 신촌역에 생긴 모 회계 학원과 학교에 수업하러 오는 유명 강사 등 ‘고시 권하는 사회’에서 많은 대학생들은 오늘도 ‘취업이냐 고시냐’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경기가 위축돼 자기가 원하는 직업이나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은 현 시점에서, 흔히 말하는 ‘인생 한방’의 기회, 고시는 많은 대학생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시생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젊은 인재들이 개척 정신없이 잠깐 고생해서 편하게 살려고만 한다’는 기성세대의 걱정부터 ‘고시생하고는 사귀지 말라’고 충고하는 학우들까지 다양하다. 사시, 행시, 외시, 회계사, 언론고시 등 가지각색의 상품이 판매되는 대한고시민국에 사는 지금의 대학생, 특히 고시생은 오늘 같은 합격자 발표 날, 괜히 마음속은 더 쓸쓸하고 공허하다.

하지만 과연 모든 고시생들이 정말 편하게만 살려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에 바치고 있을까. 최근에는 합격자 수가 많아지면서 고시를 통과해도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패스만 하면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졌던 고시를 이제는 그저 중간다리로 인식하는 학생도 생겨나고 있다. 가령 이제는 회계사에 붙고도 여기에 그치지 않고 로스쿨과 같은 또 다른 길을 가는 학생도 눈에 띈다. 그리고 설사 합격한 뒤의 보상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고시라는 것이 몇 달 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닌데 그것만으로는 고시로 뛰어드는 많은 학생들의 동기를 완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고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보자. 고시생은 그저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고 가방 양쪽에 물과 우산을 넣고 다니는 이미지가 아니어야 한다. 엄청난 공부 량에 비례해서 조금씩 길러지는 자기 통제력과 인내심 등으로 자기를 단련시키고 성장하는 멋진 과정이 바로 고시이다. 그렇게 자신을 이겨냈다는 자신감을 갖고 또 다른 자아 완성을 위해 노력해갈 이들이 바로 고시생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현존재이다. 따라서 그들은 배운 것만 복습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각자 준비하고 있는 시험을 통과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여전히 배고픔을 느끼면서 자신을 채워가는 능동적인 인간형이다. ‘3년 고생해서 30년 편하게 살려고 한다’는 어르신들의 기우와는 달리 오히려 그들이 더 개척 정신으로 충만한 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고시만이 자기를 완성해가고 능동적인 존재가 되는 방법은 아니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어느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몇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오직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춰 살기가 힘든 대학생들에게 고시는 오랜 시간을 자기에게 오롯이 투자할 수 있는 역설적인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자기를 완성시켜 간다는 느낌으로 그들은 오늘도 책을 펴고 조금씩 나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이 시간이 합격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부족한 자신을 채워가는 끝없는 삶의 여정 속에서 고시는 출세가 아닌 성장을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맥주같이 기분 좋은 씁쓸함이 있는 것처럼 내가 지금 고시를 하면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훗날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나를 이겨냈음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조한진(경영·05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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