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연체료

82만 297.
지난 2008년 한해 동안 연세인이 우리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의 권수다. 우리대학교 도서관은 학교의 중앙에 위치해있고 다양한 기능이 집약돼 있기 때문에 다른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용자수가 많다. 지난 한 해 동안만 36만 명이 넘는 사람이 우리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했다(누적 이용자 수, 신촌캠 기준). 학기 중에는 하루 평균 약 3천100권이, 방학 중에는 약 2천100권의 책이 대출된다. 전체 대출 도서 중 연체된 책 수는 자그마치 13만 7천51권이다. 전체 대출권수의 6분의 1이 넘는 책들이 제 때 반납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중 현재 3개월 이상 장기 연체 중인 책은 무려 439권에 이른다.

자료사진 연세춘추



평생 따라붙는 ‘연체자’ 꼬리표

이용자 정보가 너무 많이 쌓이면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대출 및 반납 업무를 담당하는 ‘이용자 통합 서비스과’에서는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정보를 삭제한다. 하지만 미반납 도서 정보는 삭제되지 않고 영구적으로 남는다. 때문에 책을 반납하지 않고 졸업하면 반납할 때까지 ‘도서 연체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된다.

이용자가 많은 만큼 장기 연체의 유형도 가지가지. 우리대학교는 미반납 도서가 있을 경우 휴학 신청이 되지 않고 졸업증명서 지급이 보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체자들이 휴학 또는 졸업신청 과정에서 걸러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당일 급하게 휴학해야 한다며 사정을 해 어쩔 수 없이 넘어가 주었는데 휴학하고 나서 모르는 척 하는 경우도 있고,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지 않은 채 바로 취업을 했는데 10년 후 졸업증명서가 필요해 학교를 찾았다가 연체사실이 드러나 책값을 물어 준 경우도 있다. 컨닝 적발 등 불미스러운 사유로 제적당하면서 고의적으로 대출한 책을 반납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돌려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체료는 무한대로 붙는 걸까? 대답은 NO. 상한선인 2만 7천원이 넘어가면 더 이상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권 당 상한가이므로 여러 권 빌려서 모두 반납을 하지 않았다면 10만원이 넘는 연체료를 물어야 할 수도 있다. 현재 학부생 최대 대출 권수가 10권이므로 한 사람에게 부과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연체료는 27만 원인 셈. 이쯤 되면 ‘아무개 동문 도서 연체료 기부’라고 학교 재정 기부자 명단에 콩알만하게 이름 올라가도 될 수준이다.

억! 소리 나는 연체료 수익금

제때 반납하거나 연장신청을 했다면 내지 않아도 됐을 연체료. 개인에게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1년에 13만 명이 1권씩 하루만 연체를 해도 1천300만원이다. 재무처에 문의한 결과 2008학년도 총 연체료(파손, 분실 변상 포함) 수익금은 1억 2천800만원이었다. 이렇게 걷힌 돈은 매일 학교 재무처 관리 계좌로 들어간다. 하루에 입금하는 금액만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이다. 이 금액은 바로 학교 전체 예산으로 포함돼 사용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용내역 추적은 어렵다.

타 대학들은 대체로 수익금 공개를 조심스러워했다. 이화여대의 경우 연체료 수익금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한양대는 연체료가 걷힘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학교 예산으로 편입되기 때문에 1년 수익금을 따로 통계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연체료 낼래, 책 못 빌릴래

각 대학교들이 연체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체료를 부과하는 방법인데, 이 제도를 운영하는 학교는 일반적으로 한 권당 하루에 100원의 연체료를 부과한다. 우리대학교, 이화여대, 한양대 등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성균관대, 한양대 등의 학교는 아예 연체료를 온라인으로 납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시행중이다. 다른 하나는 연체일수만큼 대출이 불가능하게 하는 것. 고려대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려대 도서관 학술정보열람부 우영심 과장은 “연체료 제도를 시행했었지만 연체료가 책값보다 싼 경우 제도를 악용해 책을 독점하는 경우가 있어 대출금지 제도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 제도를 강화해 아예 연체 일수만큼 도서관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상대적으로 도서관 체제가 잘 돼 있는 미국은 도서를 연체할 경우 훨씬 강경하게 대응한다. 학교에서 직접 연체자에게 반납을 종용하는 것이 아닌, 신용 기관에 자료를 넘겨 관리하도록 하는 것. 반납을 독촉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인력이나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차라리 신용 기관에 넘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반납하지 않은 책 한권 때문에 신용 카드나 대출금 그리고 주택 대출 상환금의 이자율이 높아지는 등 사회활동에 직접적인 제약이 가해진다. 일부 극단적인 경우는 도서 연체료를 지역 자치 단체에서 부과하는 벌금과 같이 취급해 일정 기간 동안 반납하지 않거나 지불하지 않을 경우 절도로 형사고발을 하거나 사회봉사 등을 명령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의 신용도가 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험기간에 특정 서적들에 대해서 불꽃 튀는 대출경쟁이 벌어진다. 예약자가 밀려있는데 ‘까짓 거 천원 내고 말지’라는 심보로 반납하지 않은 채 ‘여유롭게’ 공부하고 시험이 끝난 후 반납하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책에 관한 속담 중 ‘책을 빌려주는 사람은 바보이고, 그 빌린 책을 돌려주는 사람은 더 바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공공재인 도서관의 책들에게까지 이 속담을 적용하지는 말자. 당신 가방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연체된 13만 7천권의 책 중 하나를 누군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테니.

 

송은지 기자 lifeholic@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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