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제의 주간이 지났다. 백양로를 가득 메운 인파와 노천극장의 음악 소리, 들뜬 공기를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가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았던 것은 아니다. 이 좋은 봄날, 한 번 신명나게 놀아보라고 멍석을 깔아준 자리에서 왜 나는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남성 중심적 문화의 산물인 대동제

사실, 나는 대동제가 별로 재미없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즐거웠던 같은데, 내게는 그냥 흐릿한 기억뿐이다. 새내기 때에는 ‘내가’ 술을 잘 못 마셔서, ‘내가’ 통금 때문에 일찍 집에 가 버렸기 때문에 재미있는 추억을 못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대동제 자체가 내가 즐기기 어려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축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남녀공학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남성중심적 문화에 편입되는 길이며, 대동제는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광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일들이 당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연대 장터에서는 모두가 술과 안주를 팔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짐을 나르고 손님을 끌어왔다. 여학생들은 요리를 하고 주문을 받았다. 물풍선 던지지나 곤장 치기 등 애교 섞인, 하지만 폭력적인 놀이들이 있었고 물풍선과 곤장을 맞아야 할 때는 어쩐지 남학생들이 불려 나오곤 했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과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폭력이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없던 일처럼 넘어가곤 하였다. 맹목적 집단주의를 반대하던 학우들은 모두 파란 옷을 입고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하였고, 함께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던 학우들은 야릇한 옷을 입은 여가수에게 환호하였다.

소통으로 만드는 즐거운 축제

경영 전문가인 하비가 처음 언급한 ‘애빌린의 역설’이라는 현상이 있다. 이는 집단의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 결정에 동의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여,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에 모두가 동의해 버리는 모순적 현상을 의미한다.

연세대학교의 대동제 진행 방식은 과연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동의하에 진행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두가 함께 파란 티를 맞춰 입고, 주점에서 술을 실컷 마시고 난 후, 어깨를 걸고 소리 높여 격렬하게 응원을 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게 축제를 즐기는 방법이라는 데에 과연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것일까.

모든 구성원이 즐겁자고 벌이는 축제의 자리였지만, 그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외되었다고 생각한다.

애벌린의 역설은 소통이 답이다

대동제를 열기 위해서 단과대, 과, 반, 동아리 등 수많은 단위에서 회의와 준비의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제가 매년 예년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그 준비가 성찰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년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기에 급급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빌린의 역설의 가장 큰 원인은 집단 내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르니, 자신의 의견과는 다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축제의 모습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를 실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고, 결국 대동제도 현재의 문제점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열린 분위기와 마음으로부터의 소통이 필요하다.

대동제가, 그 준비부터 뒤풀이까지, 누구도 억압받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송주은(심리·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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