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는 공터였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위해 비어있는 공간에 사람들은 모였다. 그래서 연세대 최초의 아고라는 민주광장이었다. 이제는 ‘민주광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올망졸망한 정원으로 꾸며진 중앙도서관 앞, 원래 공터였던 그곳에서 연세인은 사뭇 뜨거운 말을 서로에게 건넸더랬다.

아고라는 버스였다. 지난 647호 「연세춘추」의 ‘뻐스 노선’ 기사는 지금은 472번 버스로 바뀐 과거 12번 좌석버스에서 등교하던 학생들간에 ‘각 학교의 뉴우스가 조간신문처럼 펼쳐졌다’고 묘사한다. ‘젊음과 생기의 발랄함’으로 ‘뻐스는 열띤 토론장’이었다.

이제 아고라는…없다. 공터는 사라졌고 일반버스는커녕 학교 셔틀버스도 조용하다. 사라진 아고라가 민주광장과 통학버스뿐이었으랴. 쉽게 뜨거워졌던 누군가는 이제 다른 이의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두려워 나서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본받은 후배들은 행여 ‘쿨’하지 못해 보일까 의식하는 게 일상화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아고라를 원한다. 이웃의 생각을 알고 싶고 자신의 말을 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온라인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비밀의 화원’, ‘고파스’와 같은 이웃학교 커뮤니티들이 부러운 총학생회는 매년 ‘온라인 커뮤니티의 형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각종 학생단체들도 2만 연세인의 아고라 자리를 탐냈다. (그중엔 심지어 학생벤처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거나 혹은 실패중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잠시나마 시끄러워졌던 학교 자유게시판마저도 이젠 스터디를 구하거나 헌 책을 팔고 싶다는 글들로 채워지고 있다.

「연두」가 ‘감히’ 아고라를 꿈꾼다. 사이트를 만드는 건 단기간의 추진력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적인 컨텐츠를 채워넣고 관리하는 것은 인력과 시간을 장기적으로 요하는 일이다.  「연두」는 기꺼이 그 노력을 바칠 준비가 돼있다. “연두? 강의평가 사이트 아니에요?”라는 목소리가 아직 더 많다. 입술 깨문(!) 웃음을 지으며 “아니에요”라고 답한 날을 이제 ‘지난날’이라 부르게 되길, 연세대의 미네르바가 ‘연두밭’ 게시판에 나타나길 기다린다.

김필 웹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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