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 내내 공연동아리들은 3월의 새내기를 위한 연습에 집중했다. 그리고 풍물패는 그 연습보다도 더 치열하게 연습 공간을 찾아 헤맸다.

풍물패 연습공간 다 없어져

동아리에 할당된 학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비단 풍물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연습 공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풍물패가 겪는 어려움은 다른 동아리의 그것에 비해 조금 더 혹독하다.
솔직히, 악기 치는 사람이야 즐겁지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그만한 소음이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운동장 같은 개방된 장소에서 학우들의 귀를 괴롭게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뿐이다. 갈 곳이 없는 것이다! 개방된 야외에서 풍물패가 악기를 치고 있다면 십중팔구 이미 너덧 군데 정도에서 쫓겨나서 전전하다 그 곳에 정착한 것이다.
풍물의 특성 상, 연습장소는 방음 시설과 ‘진’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그나마 학우들의 안녕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연습해 왔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던 학내 장소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이제는 몇 명을 제비뽑기로 휴학시키고 등록금으로 컨테이너라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푸념 섞인 농담을 던지는 상황을 맞이했다.
풍물패는 각 패의 동아리방, 청송대, 대강당 뒤의 공터, 운동장, 야구장, 학생회관, 상경대학 지하주차장, 노천극장 위 공터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7년부터 청송대 사용이 금지됐고, 더불어 청송대에 인접한 노천극장 위 공터에서도 연습할 수 없게 되었다. 운동장과 야구장에서는 학생들과 주변 거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으며, 상경대학 지하주차장에는 새로이 사무실이 생겨났다.

후생복지관은 일방적 재검토 통보

그나마 대여 신청을 할 수 있는 학생회관의 경우, 타 풍물패와 다른 동아리와의 피 튀기는 쟁탈전을 거쳐 연습실을 대여해도 방음이 되지 않아 옆 연습실의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만다. 또한 근처 세브란스 병원에서의 민원도 만만치 않다. 진은 못 짜도 악기나마 칠 수 있는 동아리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홉 패 중 세 곳이다.  외부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개방된 장소에서는 여지 없이 주변 민원이 끊이지 않고, 서울에서 풍물패 전용 연습실이라는 것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후생복지관에 풍물패들을 위해 일정 공간이 할당될 것이라는 소식은 모든 풍물인들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동아리방 배치 설계도까지 완성된 상태에서 후생복지관 건립 전면 재검토 계획이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정말로 갈 곳이 없다. 학생회관을 빌리지 못하면 청송대로, 청송대에서 쫓겨나면 경비원이나 경찰의 출동을 각오하고 운동장에 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쫓겨나면 잔뜩 풀이 죽은 채로 터덜터덜 악기를 챙겨 돌아간다. 이것이 몇 년 째 되풀이 되고 있는 풍물패들의 유랑이다.
서강대의 경우, 체육관의 30평짜리 창고 자리를 개조하여 방음벽과 방음문을 설치한 풍물패 전용공간이 있다. 건국대, 상명대, 한국외대, 고려대 또한 풍물패를 위한 독자적인 공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려대는 학교와의 협의를 거친 후 학생회관 앞에서 연습을 진행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공간을 원한다

 언제인가, 풍물패가 시끄럽다는 게시물에 달렸던 댓글이 생각난다. ‘시끄러우니까 장구에 솜 꽉꽉 채워서 음소거로 쳐라’ 라는 내용이었는데, 기타랑 베이스 줄 다 빼고 이미지 트레이닝 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해서는 연습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남에게 소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이쯤 되면 옛 가락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바쳤던 노력이 너무 초라해져 버린다. 풍물도 음악이다.
타 대학만큼의 융숭한 대접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천대에는 익숙하다. 우리의 소리를 사랑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필사적으로 수호한다던가 하는 거창한 사명을 받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풍물패들끼리 사이 좋게 나누어 쓸 수 있는 공간을 원할 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배회한다

장 훈{풍물패 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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