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저 개인적으로는 연세춘추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매주 밤샘을 거듭하는 신문제작으로 개인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당대 첨예한 이슈를 취재하며 연세의 역사 한 가운데 서 있었다는 자부심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노천극장 뒤로 높게 솟아있는 전파천문대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 2003년 발표되었을 때 학내에는 격한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단과대에서는 학교의 스카이라인이 흐트러진다는 항의를 했고, 이과대에서는 천문대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화는 쉽게 이뤄지지 못했고,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이 깊게 패는 듯 했습니다.
당시 학내에는 2003년 초 이뤄진 연신원 철거 사건 이후 캠퍼스 개발에 대한 생태론적인 입장과 필요에 따른 개발을 수행해야한다는 입장이 계속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연세사회는 의사결정주체와 구성원 간의 확립된 의사소통의 수단이 부재했고 그러한 가운데 편견과 왜곡은 깊어져 갔습니다. 서로 간의 이해 부족과 소통의 결핍이 2003년 한해 동안 ‘개발’이라는 일부분에서 드러났을 뿐이었고, 문제의 본질은 연신원과 전파천문대 개발에 대한 찬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이 지적되지 않았고, 이것은 2004년 초 총장 선출에 대해 교수사회와 직원노조가 대립하는 사태로 치달았습니다. 이 일은 연세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2003년과 2004년에 이어진 의사소통의 난맥에서 총학생회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2003년 신학과의 공간 부족의 문제를 결과적으로 외면하기도 했고, 2004년에는 학내 주체들의 총장 선거 참여에 대해 다른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총학생회는 학내의 분규에 뛰어들었고 학생들은 학생회와 연세춘추가 전달하는 정보의 괴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교원, 학생, 직원의 삼주체 간 괴리가 더 깊어진 것에는 이런 오인된 정보의 전달이 한 몫을 했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의사소통이 마비된 사회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한국 사회는 자명하게 경험했습니다. 2008년 여름의 광화문에서는 시민들이 정부와의 소통 부재와 단절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국민들은 정부와의 대화를 위해 큰 비용을 치렀습니다.
결국 이런 위기를 타개할 가장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사실상 유일한 대답은 ‘언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사소통의 단절을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알리고, 구성원들은 보도를 통해 타인의 의견을 인식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를 최대한 줄인다는 게 바로 언론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연세사회 전체를 포괄할 취재력을 가장 강하게 가진 연세춘추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책무일 것입니다. 다른 학내 언론이나, 소집단들이 다루기 힘든 전체적인 시각을 통해 연세 사회 화합의 밑거름이 되는 역할이 바로 연세춘추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연세춘추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처럼 쉽고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세 사회를 위해서, 연세 구성원들을 바라보며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9월에 있었던 문과대 학생회장에 관련된 기사는 연세춘추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봅니다. 연세 구성원들의 삶에 등불을 비춰주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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