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부기자 박소영

 

 

2008년 3월 28일

사람 잡는다 진짜,

그 OK사인 하나 받으려고
장장 6시간.

징하다 징해
애드바룬 하나 때문에
야심찬 금요일 밤의 계획은 모-두

날아가 버렸고

남은 건,
12시 57분에
기숙사 통과한 후
헐떡거림


손끝의 올릴 듯한
신문지 냄새.

벌써부터 이런데,

걱정된다.

- 수습기자 시절 온통 투덜거림으로 가득한 다이어리 한 켠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7개월 전, 수습기자였을 때의 부끄러운 나의 일기다. (저때만 해도 난 금요일에 집에 가리라는 ‘발칙한’ 희망을 품고 있었지 ^^;) 부기자 일기를 쓰려니,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일기장에서 수습기자 시절의 기억들을 꺼내봤다. 일기장은 온통 투덜거림과 불평,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자유에 취해 잊고 살았던 의무가 한꺼번에 지워져서인지 당시의 춘추는 나에게 부담 그 자체였다. 뭐 지금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부담을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테니까.

#1. 말을 건넨다는 것은,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은 춘추가 주는 큰 고역 중의 하나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 한없이 망설이고 있으면 때로는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쭈뼛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그 어렵던 말 걸기를 은근히 즐기고 있다. 나의 취재처인 UIC의 학생들에게 한국말과 어눌한 영어를 섞어 질문을 하기도 하고, 각 동아리의 동방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취재거리를 묻기도 한다. 또 어렵게 잡은 취재원과의 인터뷰에서 혹시라도 질문거리가 떨어지면 ‘주접’을 떠는 법까지 알게 됐다. 그렇다. 부기자 생활 절반이 흐르고, 춘추는 나에게 ‘늘어가는 말발’을 선사하였다.



#2.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것 하나쯤은 가지는 게 어떨까요.”(연두 만나고 싶었습니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인터뷰 中)

“소중한 인연들과 잊지 못할 추억, 큰 행사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경험과 기분 좋은 추억들 이 모든 게 매력을 넘어선 중독성이지요.” (1593호 영화제 자원봉사자 안교완씨 인터뷰 中)

“직업의 특성상 창작 작업이다 보니 불안정하기도 해요. 그래도 오히려 그런 것들이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걸요.”(1598호 연극 『벚꽃동산』무대감독 박영준씨 인터뷰 中)

“무대를 아끼는 마음, 그것 하나만 있다면”(1598호 뮤지컬 『록키호러쇼』 무대감독 민활란씨 인터뷰 中)


이제껏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들은 소중한 한마디들이다. 이들은 나에게 기사를 쓰기 위한 멘트 그 이상의 것들을 남겨주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속에 자리하고 있던 일에 대한 불만과 불평들이 조금씩 부끄러워졌다. 뭘 그렇게 대단한 걸 한다고 온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굴었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어디에 숨고 싶을 정도였다.
신문을 보며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바로, 기사는 ‘사람’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세상 곳곳의 사람들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기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사람냄새 나는 기사를 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들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들은 때때로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 남은 기자생활도 사람을 탐하며 또 그렇게 보내야겠지.

#3. 조금씩, 조금씩 더 채워줘. 꽉.

하나의 기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난 문화부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문화적인 사람이 되지 못해서 더욱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더군다나 파트너 서홍오빠와 문화부 정기자 규진이 모두 너무 ‘능력자’들이라 난 더욱 더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선 공부를 하고 취재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저번 1594호, 실험예술제 관련 기사를 맡은 적이 있었다. 비록 사이드기사이고 분량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제 자체가 너무 생소한 것이라 실험예술 관련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특히, 행사 중 세계 정상급의 실험예술가들이 모인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는 혹시나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그 시간을 견뎠던 기억이 난다. 만약 기사가 아니었더라면, 춘추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기회가 언제 있겠는가.



#4. 그래, 함께이니까.

다 쓰고 나니 뭔가 너무 미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었는데……. 아마 이 모든 것들이 ‘함께’여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러블리 101기 동기들과 문화부 식구들, 그리고 춘추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또 내 기사를 읽고 쓴 소리를 해 줄 어딘가에 있을 독자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그래, 꼭 불타는 뜨거운 열정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런 사람들과 함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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