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후 보는 첫 시험, 필자를 사이에 두고 양 옆에서 교묘히 답안지를 주고받던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공부를 안했으면 차라리 백지를 내고 말지 저러고 싶을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10년 전 기자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영어시간. 알파벳을 대‧소문자로 쓰는 쪽지시험이었다. 전 날 나름 열심히 외웠는데, 도무지 소문자 '쥐'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의 머리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것만 쓰면 다 맞을 자신 있는데, 볼까 말까…’ 결국 바로 앞자리에 앉은 친구 시험지를 슬쩍 보았는데, 간절히 바랐기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몰라도 바로 보이는 g. 재빨리 베껴 적고 제출하는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결국 그덕에 100점을 받았지만, 그 점수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워 하다가 앞에 앉았던 그 친구에게 결국 컨닝 사실을 고백했다던 전설이….

열 두 살의 기자가 했던 행위도, 스무 살의 그들이 했던 행위도 결국 컨닝이다. 이는 어리다고 피해갈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사내 승진 시험에서도, 심지어 사법고시에서도 컨닝은 공공연하게 발생한다.

양심,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사이

사회의 법망에 걸리는 중대한 범죄 뿐 만 아니라 컨닝과 같은 어찌 보면 소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조차 사람은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대체 그 양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중1 도덕 교과서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단원에 의하면 양심이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려 하거나 그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그만 두라고 명령하는 마음의 요소’로 정의된단다.  양심은 인간에게 있어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재판관의 역할과 자기의 행동을 반성하여 다음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게 하는 등대의 기능을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해서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속이면 안 된다고 우리는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컨닝을 한다. 왜?

컨닝 공식 : S > C + D + P


컨닝을 통해 얻게 될 점수와 학점의 만족에 대한 기댓값이 양심의 가책,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 상실 정도와 걸렸을 때 F를 맞을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을 합친 값을 상쇄하고 남을 경우 수험자는 컨닝을 감행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데 나만 안하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라서, 점수는 학점과 연결과도, 학점은 취업과 직결되기 때문에…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컨닝을 한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www.alba.co.kr)에서 대학생 556명을 대상으로 교내시험에서 컨닝한 경험이 있는가에 대한 설문을 실시 한 결과 70%가 컨닝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잠깐, 이게 과연 개인 양심만의 문제인가

컨닝을 개인적인 양심 문제와만 연관 짓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다. 누군가 컨닝을 하면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평가가 대부분인 오늘날의 평가구조에서는 피해 정도가 더하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양심을 지켜 시험을 본 학생에 비해 컨닝 한 사람의 학점이 높다면, 고민에 빠지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심을 지킨 쪽이다. 과정의 정당성과 결과와의 관계에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억울하더라도 꿋꿋이 양심을 지키거나, 양심을 파는 대신 점수를 얻는 그 대열에 편승하거나.


'무감독 양심 시험제' 도입 추진하는 원주캠퍼스

이러한 ‘컨닝 만연 시대’에도 불구하고 감독을 한층 강화하기는커녕 감독을 없애는 ‘무감독 시험제’를 도입려하는 학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무감독 시험제의 시행이 더 선호되는지도 모른다. 학교 이미지 차원에서 큰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는 이번 중간고사부터 총학생회를 주최로 ‘무감독 시험제’를 시범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적용되는 학과는 경영학과, 행정학과, 법학과 등 정경대학의 몇 개 학과중 담당교수의 허가를 받은 몇 개 과목이다. 원주캠 부총학생회장 최승민(정경법학‧02)씨는 “정경대는 대부분의 과목이 서술형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컨닝 자체가 힘들다는 점에서 무감독 시험제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며 “추후 결과를 보면서 점차 확대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주학생복지처장 김종두 교수(인예대·영문)는 “원주캠퍼스가 추진하는 '클린 캠퍼스' (흡연/음주/교통사고/컨닝 없는 학교) 의 일환으로 무감독 시험제를 추진중이다. 아직 시작단계라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불씨를 당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교수와 학생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시행해 간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수업에서도 이번 시험부터 임시로 시행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분위기 따라…성공이냐 실패냐, 무감독 시험제의 두 얼굴


무감독시험제도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학교로는 대표적으로 포항의 한동대학교가 있다.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이 학교는 시험을 보기 전에 양심선언을 하고 감독 없이 시험을 본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치뤄지는 모든 시험에 감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컨닝 발생이 거의 없다. 이러한 학교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는 한동대학교 학생 황수진(상담심리사회복지‧07)씨는 “양심선언을 하고 보는 시험에서까지 컨닝을 하는 것은 스스로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며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점수는 의미가 없으며, 결국 본인의 진짜 실력은 탄로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한동대학교 시험지. 시험 보기 전 시험지에 '양심서명'을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례만 보고 섣불리 도입했다가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컨닝도 말 그대로 ‘분위기를 타기’ 때문이다. 2006년 1학기 신촌캠의 어느 철학입문 수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간고사 시간에 학생들의 '자유이성'을 믿는다며 나가신 교수님. 그러나 학생들의 자유이성은 서로에게 문제에 대한 답을 묻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심각한 고민이나 가책 없이 너도나도 컨닝을 감행했고, 심지어 책을 그대로 베끼는 학생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심을 지키고자 실력대로 시험을 보았던 학생은 컨닝을 했던 학생에 비해 더 낮은 학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수업을 수강했던 이아무개(영문‧06)씨는 “양심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행동했고 후회는 없지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되면 이렇듯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위기 잘못 타면 이런 '컨닝의 향연'이 펼쳐 질수도….

컨닝하지 맙시다 - 컨닝추방운동 벌이는 학생들

시험기간에 신촌캠 교내에 플랑을 걸어두고 '우리 컨닝 하지 말자'고 외치는 학생들을 본 적 있는지. 기독교 동아리 중 하나인 '학생 신앙 운동' (이하 SFC) 에서는 매년 시험기간마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컨닝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 SFC 위원장 양정훈(독문·03)씨는 기자와의 전화에서 "컨닝에 대해서는 양심에 호소하는 수 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부분에서 애매한 면이 있지만,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해서 매년 진행하고 있다"며 "컨닝을 막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년 비슷하게 진행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이제는 전통으로 굳어져 형식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캠페인 덕에 학생들은 컨닝의 유혹에 흔들리는 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합리화, 자기기만의 순간 

‘기록은 남지만, 죄책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진다’
컨닝을 정당화 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속삭일 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양심보다는 그래도 남아서 크고 작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시적인 점수가 상황에 따라 중요할 수도 있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죄책감이 사라진다는 사실 자체를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유야 어떻든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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