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캠은 올해 11월에 30주년을 맞이한다. 따라서 30주년 기념 행사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지난 1595호에 30주년 기념 행사로 어떤 행사들이 진행되는지 알리기 위해 ‘원주캠 30주년 기념행사 열린다’라는 기사를 썼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별로’인 기사다.

쓸 당시, 이 기사는 학생들에게 30주년 기념 행사로 무엇이 열리는지 알려주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취재를 했다. ‘학생들은 30주년 행사로 뭘 하는지가 가장 궁금할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기사를 쓰고, 교열을 보고, 신문이 발간되는 월요일. 난 신문을 집어들었다. ‘독자’의 마음으로 기사를 차근차근 읽었다. 내가 이렇게 썼었나? 30주년 기념 행사 기사는 단순히 행사 나열로만 이뤄진 기사가 돼 있었다.
기사는 나만의 착각으로 이뤄졌다. 내가 생각했던 ‘독자들이 궁금할 것’은 독자가 아닌 기자인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독자도 기사의 제목을 보고 이런 내용을 기대했을까?

기사가 단순하게 쓰이면 독자도 단순하게 받아들인다. 과연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가 ‘기자’일까?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학교에서 나눠주는 팜플렛으로도 알 수 있다. 학내 곳곳에 붙여있는 게시판에서도 알 수 있다. 여러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굳이 지면을 낭비하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다.   

이 기사는 단순히 단어, 단어의 나열일 뿐 학교 팜플렛과 다름없었다. 기사는 이야기이지만, 팜플렛은 이야기를 담고 있진 않다. 듣는 독자가 있고 사건과 결말이 있을 때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이 기사는 결말만이 존재한다. 음식을 만들 때 기본 재료를 푹 끓여야 깊은 맛이 난다. 이처럼 기사도 마찬가지다. 누가 끓이다만 국을 떠먹겠는가? 기자는 어떤 소재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 할까라는 기본에 충실한 치열한 고민이 있을 때 진정한 ‘이야기’가 나타난 기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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