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서, 배심원 일동은 이 재판에 있어 사실을 정당하게 판단하고 법과 증거에 의해 진실한 평결을 내릴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 5월 27일(화) 오후 2시, 서부지방법원 303호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는 서울에서는 처음 이뤄진 것이다. 이번 재판은 일명 ‘잠바 절취 사건’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잠바를 빼앗은 것이 강도죄냐, 절도죄냐 하는 것이 재판의 핵심여부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2월 6일 새벽, 피고인 박아무개군(19)은 피해자 김아무개씨(65)의 돈을 빼앗기 위해 김씨가 술을 마시고 나올 때까지 술집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 뒤 만취한 김씨를 따라 그의 집 앞까지 갔다. 집 앞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박군을 미심쩍게 여긴 김씨가 ‘나를 날치기 하려는 것이냐’라고 말했고 두 사람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박군은 ‘자신은 주택의 위층에 사는 사람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에 김씨는 ‘그렇다면 위층으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박군는 여기서 ‘담배 하나만 피고 갈 것’이라고 대응했고 이를 미심쩍게 여긴 김씨는 ‘나랑 한 번 붙어보자는 것이냐?’며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박군은 김씨가 입고 있던 잠바를 당긴 후 현금 6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이 사건의 초점은 김씨 자신이 직접 잠바를 벗어 팔에 걸친 상태에서 몸싸움을 했는지, 아니면 박군이 김씨의 잠바를 강제로 벗겼는가의 여부였다. 여기서 전자의 경우 박군의 절도죄가 성립되고, 후자의 경우 박군의 강도죄가 성립된다. 담당 검사는 이 사건의 전말을 배심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법적인 용어를 배제하고 쉬운 생활 용어를 들어 설명했다. 검사가 직접 ‘잠바 절취 사건’을 재현하려하기로 했으나 재판장에 의해 제지 당했다.

 이 재판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의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6명의 배심원이 참가했다. 그 중 5명이 실제로 배심원으로 참여했으며, 1명은 예비 배심원으로 선정돼 배심원이 임무를 다할 수 없을 때 이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간에 재판장은 배심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고 배심원의 질문은 종이에 적혀 재판장에게 전해졌다.

 처음에는 4시간이 넘는 긴 재판 과정과 잘 알지 못하는 법률 용어들, 딱딱한 법정 분위기 때문에 기자는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피고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 이에 대한 자백과 증거자료들, 검사의 주장과 변호인의 반론을 주의깊게 듣다보니 재판 과정에 깊이 빠져들게 됐다. 또한 법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재판을 받은 적도 없는 시민들이 배심원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과정을 지켜보는 배심원들을 보며 우려는 사라졌다.

 이 후 배심원들의 평의가 이어졌다. 배심원의 평의는 2시간 정도 걸렸다. 유무죄를 정하는 오랜 평의 끝에 강도상해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강도치상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중 절도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이 잘 진행된 것에 대해 재판장은 감사를 표하며 재판은 마무리됐다. 

▲ 평의를 끝낸 배심원들이 재판부가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글 조규영 기자 summit_k@
자료사진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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