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 20컷에 담는 즐거운 상상, 재잘재잘 ‘페차쿠차’

오똑한 코와 송아지같은 눈망울을 가진 여인. 김태희, 그녀를 이렇게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사진을 한 번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흥이 올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는 이렇듯 뇌에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다. 때문에 말과 함께 이미지가 주축이 되는 파워포인트 발표(아래 ppt)는 오늘날 대학가와 직업세계를 모두 주름잡고 있다. 하지만 수백억이 달린 수주를 따내기 위해 절박하게 만드는 직업세계의 ppt와는 달리 대학가의 ppt 발표는 아직 지루하다.

모두에게 고역인 ppt 발표?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주제에 맞는 참고문헌을 찾고ㄴ 내용을 엮는 것도 힘든데 자신의 언어로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하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듣는 것이 금방 지루해진다. 발표내용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교수가 진행하지 않는 ppt 발표는 시험범위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학생도 있다.

 교수도 ppt 방식을 즐기지만은 않는다. 연문희 교수(교과대·상담교육학)는 “ppt를 사용하면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할 수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 반응을 살피며 수업을 하는 것이 좋은 그이기에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도록 하는 ppt 방식이 달갑지 않다. 연 교수의 말대로 ppt 발표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 화면에 더 시선을 집중하도록 만들어 발표자와 청중의 교감을 방해하기도 한다. 

▲ 지난 2007년 9월에 열린 ‘페차쿠차 나이트 서울 vol 03’에서 패션디자이너 한상혁씨가 발표를 하고 있다.

발표자도 청중도 즐거운 ‘페차쿠차’

하지만 청중과의 교감을 만들어내는 발표 방식도 있다. 심지어 발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도 발표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든다. 일본어로 ‘재잘재잘’이라는 뜻인 ‘페차쿠차’가 바로 그것이다. 유명 예술가들이 발표자로 참여한다는 점도 매력이지만 청중들이 자발적으로 발표를 즐기도록 유도하는 것도 큰 매력이다.

 ‘페차쿠차’는 한 장의 슬라이드를 20초씩, 총 20컷을 보여준다. 20초가 지나면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기 때문에 발표자들은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발표자들은 자신이 직접 창작한 작품에 대해 신이 나서 길게 말을 하다가도 20초가 지나면 다른 작품 이야기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또 슬라이드가 20컷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가장 감각적이고 작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선정해야 한다.

 페차쿠차는 영국 출신의 건축가 부부 아스트리드 클라인과 마크 다이삼이 친구들과 여행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 지금은 전 세계 50개국에서 페차쿠차 방식의 발표를 하는 파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영리단체인 ‘어반 파자마’가 지난 2006년부터 ‘페차쿠차 서울’을 열고 있다. ‘어반 파자마’의 창립자 중 한 명인 건축잡지『SPACE』 박성태 편집장은 “건축가 하태석씨를 통해 페차쿠차를 알게 됐고, 4명이 의기투합해 ‘페차쿠차 서울’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페차쿠차 서울’은 지금까지 5번 개최됐지만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오는 6월 파티를 계획 중이다.

재밌다, 준비됐다, 적용해보자 !

페차쿠차의 인기요인은 배꼽잡는 ‘재미’다. 페차쿠차는 ‘전체가 쇼’라는 모토 아래 신나는 쇼를 펼친다. 짧은 시간에 청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감각적인 이미지와 말투는 기본이고 가면을 쓰고 등장해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고 엉뚱한 멘트로 자기소개를 하기도 한다.

 청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다. 심각한 이야기를 쇼처럼 변화시키기 위해 재미있는 부분과 진지한 부분을 섞기도 하고 어떤 몸동작을 취해야 할지 미리 연습하기도 한다. 박 편집장은 “공부를 하든 작업을 하든 발표자의 작품 중 재밌는 부분을 응용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작품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혹시 발표가 재미없다면 잠깐만 시선을 돌리면 된다. 박 편집장은 “30분 이상 참아야하는 일반 발표와는 달리 페차쿠차는 6분 30초만 기다리면 된다”고 말한다.

 이미지보다는 말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인문학 분야에서도 페차쿠차를 이용한다. 지난 학기 조한혜정 교수(사회대·문화인류학)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페차쿠차 방식을 이용한 발표를 주문했다. 학생들은 각자 10컷 정도의 이미지를 준비해 20초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조 교수는 “학생들이 발표할 이미지를 고르는 것 자체를 즐겼고 관련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어했다”라고 말했다. 

 페차쿠차는 발표 시간과 슬라이드를 제한하고, 상대방을 즐겁게 하라는 논리가 핵심이다. 일반적인 ppt 발표 방식에도 충분히 적용해볼만하다. 20초, 20컷이라는 형식 안에 재미있는 내용을 담아 관객들이 스스로 발표를 보러오도록 만드는 페차쿠차. 보는 사람도, 발표자도 즐거운 ppt 발표를 위해 페차쿠차 같이 간단명료하고 재미있는 발표방식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글 양아름 기자 diddpql@
자료사진  어반파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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