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市)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가루를 흘려보냈다.

 -오정희, 『중국인 거리』

석탄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기계를 움직일 동력을 만들기 위해 쓰였고 집안의 온기를 더하기 위해서도 쓰였다. 이를 나르기 위해 산길을 오고가던 기차 역시 석탄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석탄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석탄을 캐던 탄광도 석탄을 나르던 철로도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석탄은 석유보다 편리하지도 않고 산길을 달리는 열차는 KTX보다 빠르지도 않다. 하지만 애틋한 추억이 담긴 불편함과 느림이기에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삼척에 남은 단 하나의 탄광, 도계광업소

  삼척시 도계역에서 자동차 도로를 따라 10분정도 걸어가면 도계탄광의 입굴 갱도가 나온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음악을 하고 싶은 아들이 광부인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비를 맞으며 공연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입갱 지역에는 석탄을 옮기는 무개화차가 철도 위에 조용히 정차해있고 탄가루로 까맣게 덮여있는 철도가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계탄광은 1936년 삼척개발회사에 의해 개발됐다. 태백에 석탄 매장량이 많다는 걸 발견한 일본인들이 도로를 닦고 철길을 만들면서 도계탄광 역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태백 석탄박물관 정연순 직원은 "개발 이전에는 500여 명의 주민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지만 탄광도시로 변해가면서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고 말했다.

 한창 성황을 이뤘던 탄광촌이었지만 80년대 들어 석탄의 수요가 줄자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태백 관내에만 43개가 있던 탄광을 정부는 강제로 폐광시켰다. 현재 태백에는 3개, 삼척에는 1개의 탄광이 남아있을 뿐이다. 삼척에 유일하게 남은 도계탄광은 채굴량이 많이 줄었지만 몇 십년 동안 일해 온 광부들이 예전과 같이 채굴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사라진 인클라인과 사리질 스위치백

도계탄광을 개발했던 삼척개발회사는 석탄의 운송을 위해 지금의 ‘영동선’을 만들었다. 이 중에 ‘통리~심포리’ 구간은 경사가 급해 열차를 모터로 끌어올리는 인클라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인클라인 구간에서는 열차에 체인을 걸어 끌어올리기 때문에 열차가 가벼워야했다. 승객들은 열차에서 내려 철도의 옆길로 걸어 올라가 다른 열차로 갈아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963년 터널이 뚫려 인클라인 방식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금 심포리역은 지나가는 열차는 있지만 정차하는 열차는 없는 조용한 신호장으로 격하됐다.

 터널이 뚫린 자리에는 인클라인 구간이 없어지고 스위치백 구간이 만들어졌다. 경사도가 높으면 철도를 놓기 힘들기 때문에 갈 지(之)자 모양으로 기차가 움직이며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도계의 흥전역과 나한정역 간이 유일한 스위치백 구간이다.

산아래를 굽어보는 기차

도계역에서 열차를 타면 스위치백 구간을 지날 수 있다. 열차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모습은 온통 산뿐이다. 산이 평평한 중간지대에는 작은 마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산허리를 지나가는 열차는 터널을 지나고 점점 올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멈춰선다. 그리곤 천천히 후진하다가 다시 앞으로 방향을 바꿔 더 높은 곳에 있는 역으로 올라간다. KTX가 생긴 이후로 역방향 기차가 익숙해졌지만 계속 뒤로만 가는 열차가 아니라 앞으로 가던 기차가 뒤로 가는 모습에 승객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산간 지형이라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움직이려는 것이 스위치백 구간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목표라고 한다.

 오는 2009년 스위치백 구간은 폐선될 예정이다. 터널이 노후됐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 이 구간 대신 동백산역부터 도계역까지의 지하 터널을 통해 기차가 운행된다. 지금의 스위치백 구간은 관광자원으로 계속 활용할 예정이지만 이제 스위치백을 운행하는 기차를 직접 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통리역 직원 최진섭씨는 "공사가 길어져 없어지기까지 3~4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광산업이 사양화되자 정부에서는 강원도에 카지노를 유치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5만 태백시민의 생계거리가 부족해 지금 태백시는 '휴양도시, 관광스포츠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스키장, 골프장, 체육관들을 활발하게 지으며 관광산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중이다. 일상적인 모습이 점점 관광상품으로 변하고, 현실에 존재하고 추억을 떠올릴 장소들이 이제는 정말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글 양아름 기자 diddpql@
시진 김지영 기자 euph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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