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이요? 미술 아닌가요?”  미학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생소한 단어인데다가 한자를 살펴봐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학이란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이란 뜻이지만 과연 아름다움을 학문으로 고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많은 미학자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고찰했고 이를 기록해 후세에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서울대학교 미학과가 경성제국대학이 설립 될 당시에 창설돼 본격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미학(美學)이란 말 그대로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미학이다. 모든 학문이 그러했듯 미학도 처음부터 미학 그 자체로 시작하진 않았다. 고대 예술 이후의 철학자들은  세상 만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미학에서 논의되는 아름다움은 회화나 문학작품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 즉 영화나 음악, 조형예술 등 아름다움을 내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을 담는 요소란 무엇인지, 어떤 기준이 충족돼야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미학의 일부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를 상호 순환되는 관계로 바라보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예술철학을 발달시켜 나갔다.

고대와 중세의 미학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했다. 고대 미학에 있어 플라톤은 아름다움이 완전한 이데아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철학에서처럼 수학적이고 체계적인 비례가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플로티노스는 다소 생소하지만 미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빛으로부터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유출설을 주장한 플로티노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의 회화와 빛에 대한 분석이 수세기에 걸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중세 미학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중세 미학의 특징은 기독교적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성서의 시작인 빛, 일자(一者)로부터의 미학을 이뤘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중세의 영향을 받아 신적인 미와 감각세계의 미를 나누고 신의 존재에 대해 역설한다. 또한 아퀴나스는 통합성, 비례, 명료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통해 아름다움의 적절한 기준을 찾고 있었다.

근대에서는 칸트와 헤겔이, 현대에서는 다양한 철학·미학자들이 나타난다. 발터 벤야민, 미셀 푸코, 질 들뢰즈 등 우리가 익히 들어본 철학자들은 대부분 각자의 독특한 미학 사상을 가지고 있다. 발터 벤야민의 경우,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논문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아우라란 예술품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경험을 뜻한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정의하고 기술복제시대를 탐색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사진과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탐구하기도 했다. 

많은 인문학이 그러하듯 미학도 현대에 있어서 그 발자취가 마땅치 않다. 철학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어리석은 것처럼 미학의 위치도 불분명하다. 현대의 대가들이 미학을 자신들의 중요한 사상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들에서 유추해보건대, 미학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는 것 같지 않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모두 다른만큼 그 생각을 이으려는 노력과 성찰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물리학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대통일이론’처럼 미학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그리고 삶의 진실에 대한 단서를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최지웅 기자 cacaw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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