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 노래 불러줄래요? 엄마는 아플 때 노래 불러주는데.
이사벨 : 병실에서 노래 부르는 건 처음이지만 해 볼게.

영화 『스텝맘』의 한 장면. 벤과 이사벨의 대화에서 둘이 어떤 관계일지 짐작할 수 있는가. 이사벨은 벤의 새엄마이다.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벤은 아버지와 결혼한 이사벨을 차갑게 대한다. 그러던 중 놀이기구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친 벤은 이사벨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재혼가정의 갈등을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

가족의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것이 바로 ‘가족학’이다. 이 장면의 경우에는 가족학의 이론 중 ‘체계이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벤이 특정한 사건을 거치면서 이사벨을 ‘엄마’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가 점점 친밀해져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벤이 이사벨과 자신을 부모-자녀 관계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일러스트레이션 남아름

가족학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시작된 가족학은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 도입돼 본격적으로 가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학제적인 성격을 가진 가족학은 사회심리학, 인류학, 경제학에서부터 인구학, 사회복지학까지 다양한 학문을 포함한다. 이제 가족학은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아 가족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현상을 분석하는데 사용된다. 가족학은 ‘가족 체계’를 중심적으로 연구한다. 즉 가족은 구성원에게는 기초적이고 환경적인 집단이고, 사회에서는 기본구성단위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가족학에서는 이러한 가족을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쌍방향적으로 연구한다. 이러한 가족학 이론은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영화 『가족』이나 『말아톤』이 가족 구성원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응집적 가족주의’를 보여준다면 영화 『바람난 가족』, 『좋지 아니한가』는 이름만 가족일 뿐 각자의 삶이 독립적인 ‘분리적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학은 여러 가지 가족의 형태를 이론적으로 분석해낼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최근의 저출산 고령화, 이혼율 증가, 다문화 사회로의 이동 등과 같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가족학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변화하는 가족의 모습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말아톤』. 자폐아의 삶을 그린 이 영화에서 우리는 장애가 있는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영화 『가족의 탄생』은 가족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을 탈피해 ‘만들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가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가족들은 부모와 미혼의 자녀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가족인 ‘표준가족’만이 아니다.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기러기 아빠와 같은 분거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한다. 이것이 영화를 위해 설정된 특이 사항은 아니다. 경희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가족전공 유계숙 교수는 “영화에서 달라진 가족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가족의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영화 『가족의 탄생』은 우리 사회의 개별화되고 특성화된 다양한 가족의 등장을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혈연관계보다는 정서적 관계가 더욱 부각되고, 가족구성원 모두의 평등한 관계가 유지되는 형태이다. 이 뿐 아니라 집단적인 가족의 구성원이지만 개인의 선택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 영화는 가족이 생애주기, 경제적 필요성, 삶의 환경에 의해서 적절한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사회의 인식과 정책이 이와 같은 가족 형태의 다양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다문화가족, 한부모가족, 재혼가족처럼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가족의 형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분석한다.

가족학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집단중 가장 중요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집단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이다. 가족관계만큼 우리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주는 공동체는 없다. 그런점에서 볼 때 가족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족학의 발전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의 형태와 정의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족학은 무궁무진한 연구 영역을 가진다. 즉, 우리가 ‘가족’이라고 말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가족학은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이론에 입각한 실천을 강조하는 학문 분야이다. 구체적으로 가족정책, 가족치료, 가족생활교육 등을 통해 실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우선 가족정책은 정부가 계획하는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과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가족원이 사회 제도와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족치료를 하기위한 상담의 분야에서는 체계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개인치료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족체계를 파악해 근원을 알아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생활교육은 가족을 하나의 체계로 이해하고 부부관계와 부모-자녀 관계와 같은 하위체계를 통해 가족관계에 접근한다. 부부교육, 부모교육 프로그램, 아버지의 모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신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꼽은 것은 바로 가족이었다. 가족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전보다 소홀하게 취급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인에게 가족이 주는 의미는 크다. 무엇보다도 정신없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한한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안식처라는 것은 변함없다. 너무 익숙해 모두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 그리고 이를 이론화 시킨 가족학. 가정의 달인 5월,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봄이 어떨까.

조규영 기자 summit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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