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일상’과 ‘소통’의 미학

미술이 야외로 나오고 있다. 단순히 공간을 예쁘게 꾸미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시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도시를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려하고 있다. 여기서 공공미술은 야외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주변의 미관을 조성하고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관 주도의 공공미술?

공공미술의 시작을 명확히 규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정부의 정책이었던 ‘공공작업진흥 프로그램’을 공공미술의 시작으로 본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보다 미술가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는 성격이 강했다. 1950년대 말 미국에서는 쇠락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공공 공간 속의 미술(Art in Public Space)’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공공장소에 미술을 입히자는 목적이었지만 아직 공공미술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1970년대에는 이러한 흐름을 반성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공공미술이 시민들의 관심과 이익을 반영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때부터 공공미술은 정부가 주도하는 장소 점거·전시형 공공미술과 공동체가 주도하는 공동체 미술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공공미술의 핵심은 시민들과의 소통

오늘날의 공공미술은 기획하는 쪽이 어디든 시민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추세다. 시민들의 의견수렴절차 없이 공공장소에 세워진 작품들은 철거논란이 되기도 한다. 강남 포스코 빌딩 앞에 세워진 ‘아마벨’은 지난 1997년에 세워질 당시부터 흉물스럽다는 말이 많았다. 이에 대해 기업이 소유한 땅에 기업의 재산을 전시하는데 시민이 개입할 여지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도시갤러리추진단장 박삼철씨는 “보라고 내놓은 이상, (기업 소유의 공간이라도) 이는 공공영역”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작품을 야외에 두고 이를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했다면 시민도 기업의 ‘정치적’ 작품을 비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물 밖에 있다고 모두 공공미술이 아니다. 공동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람과 함께 아름다워야 공공미술이 된다.

 비슷한 관점에서 주민들의 반대로 작품이 철거된 유명한 사례도 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작가 리처드 세라는 워싱턴의 한 건물 앞에 ‘기울어진 호(Tilted Arc)’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작품이 공간 사용을 방해한다며 8년간의 재판을 통해 작품을 철거했다. 공공장소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러 사용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사람들이 예술에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공간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게 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시민들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공공미술로 인정받기 힘들다. 

삶의 일부분으로 들어오는 공공미술

주민과 소통하는 자리를 거친 공공미술은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아트인시티 2006’의 ‘낙산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종로구 이화동은 근처에 시장이 있어 70년대부터 봉제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산비탈에 위치해 있어 위험한 요소가 많아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낙산공원이 만들어지고 주민들도 참여하는 낙산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아침이면 공원은 운동하는 주민들로 북적이고 동네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다.

 낙산공원 주차장을 마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여러가지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가방을 든 남자와 강아지가 하늘로 발을 내딛을 듯 아슬아슬하게 철막대 위에 서 있고 벤치 옆에는 로봇이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박종해 교수가 그린 ‘봉제인, 존경의 벽’에서 낙산 주민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주민들이 동네의 정서와 분위기에 맞게 그려놓은 벽화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파란색 바탕에 아이가 비눗방울을 부는 예쁜 벽화가 그려진 건물에서 봉제 일을 하던 아주머니는 “프로젝트 덕분에 즐거움까진 아니더라도 일하는 곳이 밝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굴다리를 지나 조금 올라가는 길에는 ‘굴다리 이발소’에서 이우서 할아버지(75)가 물을 끓이고 손수 칼을 가는 예전 방식대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손님들이 적어 한산하지만 공공미술을 보러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소일하고 있다. 옛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낯선 사람들에게 지난 45년간의 체취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처음에는 타지역 손님을 맞는 일이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요즘은 이런 만남이 할아버지의 일상이 됐다. 공공미술이 할아버지의 일상을 바꾼 것이다.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공공미술의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시민과의 소통이 없이 일방적으로 작품유치가 결정됐다고 비판받았던 청계천의 조각품 ‘스프링’의 전례를 생각해보자. 시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필요하다. 작은 것이 모여 일상을 바꾸는 이화동의 모습은 공공미술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가게 한다.

글 양아름 기자 diddpql@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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