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이론

뉴욕 거리의 한 여성. 그녀의 머리엔 모자가 씌여있고, 손에는 핸드폰과 쇼핑백이 들려있다. 모자는 중국 어느 공장의 한 인부에 의해 만들어져,  한국 공장장의 검증을 거치고 미국 항공기 조종사의 운행을 통해 그녀의 머리에 씌여졌다. 핸드폰도 한국의 어느 회사에서 설계한 반도체와 기계로 조립돼 뉴욕으로 공수돼 그녀가 구입할 수 있었다. 생선의 경우는 더욱 놀랍다. 브라질의 어부들이 조그마한 강에서 잡은 고기를 얼음에 꽁꽁 싸 시장으로 옮기면 캐나다인 인부가 그 생선의 뼈를 바르고 중국인이 포장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복잡성’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각기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단순할수록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문장이 적고 짧으며, 복잡할수록 묘사하는데 사용하는 문장이 길고 많아진다고 말한다. 앞선 예시에서 여성이 쓰고 있는 모자의 색깔은 단순하다. 하지만 여성이 걸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됐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일 것이다.

▲ 여성이 소지한 요소들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일러스트레이션 남아름

복잡한 세계, 복잡계

이렇게 복잡한 성격을 띄는 계(系)를 복잡계라 일컫는다. 앞서 ‘뉴욕’이라는 도시도 하나의 복잡계다. 매우 많은 구성요소들이 각자의 질서를 통해서 하나의 큰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복잡계란 여러 구성요소로 이뤄진 집합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창발, 되먹임 구조, 열린 구조, 비선형성 등이 그것이다.

창발이란 구성요소들이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서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 신드롬을 들 수 있다. 붉은 악마의 경우, 국내외적으로 언론에서 굉장한 관심을 받았던 현상이다. 수백만명의 인원이 한 곳에 모여 응원을 한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붉은 악마들이 모여 응원을 시작했고 그런 작은 질서가 수백만 시민을 움직이고 시청 앞을 가득 메우는 새로운 질서를 창발해낸 것이다.

되먹임 구조란 되먹임의 영어단어를 살펴보면 그 뜻을 훨씬 더 쉽게 알 수 있다. 되먹임은 영어단어로 'feedback', 즉 자극에 대한 반응의 상호작용을 뜻한다. 되먹임이 이뤄지면서 구성요소들이 서로 무수한 영향을 주고받아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그러한 변화를 소멸시킨다. 비인간적인 체벌 방법으로 두 학생에게 서로의 뺨을 때리게 하는 체벌은 되먹임 구조를 잘 설명할 수 있다. 선생님의 고함 소리에 누군가가 손에 조금 힘을 싣게 되면 다음 번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손바닥은 예전보다 더욱 강도가 세다.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도가 세져 있다. 결국 두 학생 모두 지칠 때까지 때리고 맞게 된다. 이런 구조를 되먹임 구조라 할 수 있고, 이런 구조는 복잡계의 일반적 특성이다.

비선형성의 특징은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학적인 비선형성은 일반적인 비선형성과 의미가 다르지만, 결론적으론 예측이 쉽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조류독감을 꼽을 수 있다. 조류독감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방역을 열심히 하더라도 어느 순간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까지 오염된다. 각종 유행병은 비선형적인 특징으로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병원균의 확산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시와 거시의 연결고리

복잡계 이론은 이런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미시적 차원에서 거시적 차원으로 현상이 창발되는 것을 다룰 수 있게 한 것이 복잡계 이론”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문에서는 현상을 거시적 현상과 미시적 현상 두 가지로 나눠 연구했다. 현상을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으로 나누는 것은 매우 모호하다. 예를 들어 99명은 미시적인 개인의 합이고 100명부터 사회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복잡계 이론이다. 미시적인 행위의 합을 통해 거시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해내려는 것이 복잡계이론이기 때문이다.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지만 거시와 미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미시적인 차원으로의 연구는 그나마 쉽다. 문화화의 경우, 사회나 학교, 매체 등이 개인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해석되고 그러한 방향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이 어떻게 문화를 형성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복잡계가 가지는 창발성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떠오른다. 복잡계 이론도 이런 창발성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복잡계 이론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돼 다양한 질서를 찾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가 우리의 흥미를 끌 만하다. 인터넷 블로그와 웹사이트들의 관계를 연구하거나 인맥에 관련된 연구를 통해 네트워크에 대한 거시적 질서를 찾아내고 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인맥의 최고봉으로 박 모 연예인을 꼽는 것도 네트워크 연구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한 두 개의 중요한 링크가 존재하는 패턴 등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 특히 주식 투자에 있어서 복잡계 이론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사고 파는 주식 시장은 매우 복잡하다. 복잡계 이론은 이런 주식 시장의 움직임을 분석해 앞으로의 주식 시세나 주식 시장을 예측해 보기도 하며, 시장의 움직임을 규칙으로 나타내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모든 지식의 향유를 위해

한국에서는 2,3년 전부터 복잡계를 연구하는 소모임이 생겨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소모임에서는 경제?사회?물리 등 다양한 학문의 전문가들이 모여 복잡계 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복잡계라는 이름을 딴 연구소가 여러 개 있을 정도로 복잡계 연구가 활성화 돼있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는 “각계의 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만큼 복잡계 이론이 학문 간 벽을 뛰어넘는 이론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만큼 복잡계 이론은 새롭게 시작되는 이론이며 많은 기대를 갖게 하는 이론이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모여 온갖 질서를 이루고 있다. 질서와 질서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우리 뿐만 아니라 지구 위 모든 것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인간의 호기심은 어디까지 그 질서를 파헤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후에는 일반인들까지, 즉 사회 구석구석 퍼진 물리학 상식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이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이론, 복잡계 이론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지웅 기자 cacaw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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