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교수(문과대·한국근대사)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 포럼’에서 ‘대안교과서’라는 이름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펴냈다. 현재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많은 문제가 있으므로, 그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사용중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모두 여섯 종인데, 그동안 포럼에서 가장 문제로 삼아 온 것은 금성출판사 교과서다. 그들은 한국사학계의 주된 흐름을 ‘좌파 민족주의’로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서술원칙을 밝혔다.

△역사 행위로 주체로 설정하고, △국제적 조건을 중시하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난 역사적 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스스로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밝힌 세 번째 원칙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대안”에서는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위에 성립된 나라로 설명한다. 이 체제는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지금까지 알려진 한 가장 적합한” 것이고, 대한민국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이런 원칙 하에서 기술할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이승만과 박정희이다.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 하에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올바르게 잡았고, 박정희가 고도성장을 주도하여 “근대화 혁명”(“대안”의 초고에서 5.16을 혁명으로 하고 4.19를 폄하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마지못해 ‘5.16쿠데타’로 규정하였지만)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독재정치를 행하여 인권을 탄압한 것이나, 이승만 정권이 친일세력에 의해서 수립된 것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오직 북한의 위협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시장경제 하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마지못해 ‘보론’으로 붙인 “북한현대사”에 대해서는 당연히 부정적이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보는 기본 입장이 정해지면서, 그 이전의 한국근대사를 서술하는 논점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크게 보면 두 측면이 서술의 축이 되었다. 하나는 대한민국 수립세력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밝히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이후 고도성장이 가능한 역사적 연원을 따지는 것이었다.

먼저, 대한민국 수립 세력은 주로 이승만의 개혁적, 민족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한민국이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민족적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세력의 결합”으로 성립되었다고 본 결과였다. 이승만 사상의 연원이 된 개화파를 중심으로 근대사를 서술하였고, 따라서 동학농민운동이나 의병항쟁을 매우 낮게 평가하였다. 이승만의 독립협회운동, 임시정부, 태평양전쟁기의 외교활동 등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임시정부 대통령 직에서 탄핵된 이승만의 ‘위임통치론’은 언급되지도 않았다.  

또한,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 발전의 연원은 일제 시대의 경제발전에 두고 있다. 일제 하에서 ‘한국인’의 생활수준이 나아졌고, 또 자본주의화의 기초가 마련되어 오늘날 한국경제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강변하였다. 일제 하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줄었지만,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 등으로 1인당 소비 열량은 줄지 않았을 것이라는 당황스러운 논리로도 이를 증명했다. 제국주의 본질과 그들에 의한 경제발전과 이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왜 민족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일제의 물적, 인적 수탈은 법률상 혹은 숫자상으로 증명할 수 없고, 또 종군위안부 문제도 일제의 강제성이 없었다고 항변한다.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는 결코 대안이 되지 못했다. ‘좌파 민족주의’를 비판하다가 오히려 역사서술의 객관성을 확보하지도 못하고, 기형적인 ‘한국적 보수우파’의 대변자가 되고 말았다. 한국 근현대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였고, 이룩해 왔는지, 그리고 역사 속의 지도자들은 민족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노력했는지, 또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등의 문제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독재시대를 찬양하여 역사를 과거로 되돌린 ‘역사성 부재’를 드러냈을 뿐이다.

김도형 교수(문과대 한국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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