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 논쟁과 청춘의 인권

“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자도 졸리고 아무리 입어도 추운 곳이 군대다.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습니까?」 -  2007.07.01 KBS 심야토론에서 전원책 변호사 발언 중

아는 것과 느끼는 것, 그 심장과 뇌세포의 사이의 딜레마 - 군가산점

허연 목련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필 준비를 하는 새학기 봄이다.
파릇파릇한 08학번 새내기들의 초롱초롱 눈망울은 강의실에서 신선하지만 작년에 늘 보이던 동기, 선배 후배들은 겨울 방학동안 입영 통지서와 신촌 바닥에 게워낸 술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그들은 군대를 갔다.
나 역시 과거 대학 다닐 당시에 참으로 많은 친구들과 동기들을 역시 떠나며 낯설은 친구들에게 필기와 활동보조를 부탁하며 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많은 선배들이 학교로 돌아왔다.

그렇게 그들은 온 세상을 어찔어찔하게 할만한 알콜을 각각의 가슴과 위 속에 털어 넣고 또다시 신촌 도로변에 값비싼 안주와 함께 깨끗이 게워냈다.
그 때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취기와 눈물이 어린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평소에 보여주었던 건장한 신체에 대한 우월감은 간데 없고 부럽고 질시하는 눈빛.
그러면서 툭 던지는 한마디,
“ 넌 좋겠다, 신의 아들이라서 ”
그렇게 나는 장애인이라서 좋겠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뒤, 그들의 그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있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에 대한 법률-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군가산점 조항에 대한 헌법 소원을 냈었다.
그들은 장애인인 나를 부러워 했지만 난 군대를 갈 수 있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군대를 갔다오는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의식과 박탈감, 그리고 빼앗긴 자아실현의 시간을 보상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군대를 가고 싶지만 군대를 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피해의식과 박탈감 그리고 ‘군대’라는 거대동맹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외감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장애인이나 여성 또한 대한의 국민인데. 라는 것과 1점~2점 차이로 떨어지는 엄연한 차별을 조장하는 제도라는 이기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난 사이버 테러와 많은 남자 동기들의 차가운 반응을 각오하고 장애인으로서.

정강용 씨는 91년 총무처 주관 7급 행정직 공채 시험에 응시해서 82.22점이는 점수를 받았다. 이 점수는 당시 가산점이 없는 상태에서는 응시자 가운데 차석을 차지한 높은 점수였다. 하지만 결과는 차석의 높은 점수를 받은 그는 탈락하고, 실제 시험 점수 78.33을 받은 군필자가 그를 밀어내고 가산점 5%를 더해 83.33점으로 시험에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와 같이 시험에 응시한 동기생 한 명 역시 81점을 받고도, 가산점 5%를 더해 86점으로 전체 순위 5등의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 군가산점을 만회하기 위해 하루 13시간씩 공부하는 강행군을 한 그는 다음해인 92년과 93년에 다시 7급 공무원 채용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가산점으로 인한 불합격이었다. 93년의 경우 충청남도 7급 행정직 시험에서 그는 점수로는 합격자 45명중 28등이었지만 가산점이 적용되자 133등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 김도현, 군가산제 비대위 '낮은시선' 자료집 中


맞아죽을 각오와 엄청난 악플을 견딜 결심을 해야만 말할 수 있는 주제, 군가산점.

▲ 2001년 징병제와 군복무의 실태 및대안모색을 위한 워크샵에서 군대에서 의문사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이혜숙씨의 증언 장면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군대를 갔다 온 이들은 이 법에 필요성을 군대에서 써버린 청춘의 일종의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에 어느 누구도 토를 달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비용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공무원이라는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이 문제다.
군가산점 페지를 주장하는 측은 이 법이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 또 다른 불합리한 차별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법이며 현재의 공무원 시험 병역 가산점 제도는 장애인이나 여성들에게 심리적 피해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차별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군가산점제는 군대를 다녀온 많은 남자들 중에서도 공무원 시험을 보는 사람에게만 해택을 주는 제도여서 공무원시험을 보지 않는 남성들이 들고 일어날 만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 군가산점제도가 단순한 임용보상정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들이나 군대에 당신의 아들과 오빠 동생을 보낸 여성들도, 또한 군과 관계된 가족을 둔 장애인들도 군가선점의 폐지에 민감하다,

그 속내를 잘 들여다 보면 군가산점제도의 시시비비보다는 그 존재성에 더 의의를 둔다.
군가산점이 존재함으로써 병역의 기회비용과 군대에 끌려갔다는 상대적이고 감정적인 감정을 보상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군복무 기간 단축 문제보다도 여론의 폭발력이 큰 것이 군 가산점 문제다. 이성적으로는 군가산점 제도가 과도한 기회의 독점을 갖는 차별적인 제도임을 잘 알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여성의 10%가 이 제도로 말미암아 차별받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군가산점 폐지로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음에도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그러나 늘 언제나 군가산점 폐지는 열받는 것이고 다시금 입영 통지서를 받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기분 더러운 것이다. 화나고 억울해 한다.

별다른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나서 정말 뜻밖에 헌법재판소에서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이 여성과 신체에 장애가 있는 남자 등에 대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소송을 했던 당사자들도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이러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그 이후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했던 사이버 성폭력과 위헌 소송 제기 당사자들에 대한 위협이 한동안 자행되었다. 실제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여성들은 갖은 욕설로 씌어진 메일과 위협전화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것은 실제로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확대되진 않았지만 분명한 폭력이었고 그 일로 인한 상처는 지금까지도 그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사이버 상의 성폭력도 주로 여성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자행되었던 것처럼, 예상과는 다르게 장애인들에게는, 나에게는 별다른 협박이나 위협은 없었다.

“전화가 왔어요. 형수야 빨리 경호원 붙여라. 실지로 여성들은 그 정도의 위협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다들 저를 여자인 줄 알았대요. 다들 여자인줄 알았다가 나중에 토론회에서 장애인인줄 알았대요.”

“제가 실제로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판정이 되고 나서 상당한 반대 여론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일체의 반응을 안보였던 것도 그것은 일종의 화산폭발이 있는 후에 화산재 같은 거였기 때문에 그걸 놔두면 사라질 거란 생각을 했어요. 군가산점제 하면서 군대간 친구들, 남자들 많이 만났는데 사람들이 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요. 군가산점이 여성들하고 장애인들에게 차별적이고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걸 감성으로 바꾸면 그래도 싫다. 자기가 공무원시험을 안 봐도 손해보는 것 같고 피해보는 것 같다.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내가 헌법소원을 하면서 설득해야 되고 획득해야 될 이론들은 설득되어야 될 것들은 정부도 아니고 이런 이성과 감성에서 오는 남성들의 피해의식이다. 이런 생각을 좀 했었어요. 엄마가 아들을 군대보내면 이 엄마는 아들 편이에요. 누나도 아들 편이죠. 그리고 장애인 아버지도 자신이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그 아들이 비장애인이면 군가산점제도 이렇게 저렇게 폐지하자는 이야기를 잘 못하죠.”

“ 듣기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죠. 여성단체들이 장애인들을 이용한다. 그런 얘기들을 듣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조용했던 것도 그렇잖아요. 막 열 받은 실연 당한 여자한테 너 울지마, 울지마. 그러면 더 스트레스 받는 것처럼. 일단은 사회가 거기에 대한 불만이나 그런 것들을 다 표출하고 난 뒤에는 아까 제가 감성의 문제라고 했잖아요. 감성이 다 표출된 뒤에는 남는 건 이성밖에 없으니까 그 때부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사람들이 감성이 많이 죽었거든요. 좀 논리적인 논쟁, 토론할 시기가 왔다. 딱 보고 있어요. 언제 내가 발언을 해야 하나. 군가산점 문제는 많이 바뀌었고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거든요. 여전히 많은 20대 남성들을 정치적으로 휘몰이 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진 거예요. 아무런 힘이 없지만. 실제적으론.”

장애인 할당제는 할당제고 군가산점제는 누군가가 이유도 없이 타당한 이유 없이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데. 모든 사람이 국가 공무원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또 국가에서 일정정도 책임 있는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분명한 보상조건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삼중적으로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고. 세미나 하면서도 매일 그거가지고 논쟁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고민하지 말자. 공무원시험 본다는 비장애인들을 모아서 거기서 티오를 주면 안되느냐. 모든 남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확대하지 말고. 아니면 군대에서 국가공무원 시험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만든 다든지. 얼마든지 제도보완 할 수 있는 게 있다. 그건 또 수긍을 해요. 문제는 감정이예요. 감정. 이게 하나의 상징이거든요. 국가가 군대 갔다온 사람들을 보상해 준다는 하나의 상처에 대한 상징적인 치료제거든요. 자기가 공무원시험을 안 봐도. 그런 부분에서 건드리기 어려운 거지.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하나도 문제 될 것이 없죠. 차라리 그렇게 문제제기 하는 사람들 모아서 정부하고 싸워야 되죠.”

기본적으로 먹으면 배부르고, 편하게 잠자고 따숩게 입을 수 있는 군대를 만드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걸까?

▲ 2001년 3월 17일 열린 이 워크샵은 군대내의 인권과 대체복무제, 양심적 병역거부등 우리 사회의 금기를 공식적으로 의제화한 자리 였다.
얼마 전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는 6일 “출범 이래 지난 2년 동안 위원회가 진상을 규명한 의문사 43건 가운데 5건(11.6%)은, 폭행치사(타살) 사건을 군에서 단순 사고나 병사 등으로 은폐·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는 있다. 몇몇 공무원을 되고자 하는 점수보다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 군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날의 전쟁은 이른바 쪽수로 결판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보병 100명보다 전투기 한 대가, 전투기 한 대보다 먼저 알아낸 정보가 전쟁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또한 이제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하지 않고 모병제를 해도 충분하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결국 모병제로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군제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개선될수록 군대에서 뺑이치고 ‘삽질’한 사람들의 감정은 더욱 요동친다. 난 징병제로 끌려 갔는데 후배들도 똑같이 끌려 갔다와야 내가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다는 그런 감정들.

“대학 내에서도 군대가고 하면 환송회 해주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친한 친구일수록 감정이 나오는데. 너는 군대 안가서 좋겠다는 말이 바로 나오거든요. 그 때는 제가 할 말이 없는 거죠. 그거는 감정적인 문제고 어떻게 문제제기 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 있는 거고. 뭐 이제 제대했다고 하더라도 전부다 군대 얘기밖에 없는데 그럴 수밖에 없고 거기에 끼어 들지도 못하죠. 그리고 사회에서도 뭔가 힘든 일을 시킬 때 그런 일을 해내지 못하면 뭐라고 얘기하겠어요.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렇다고 얘길 하겠죠. 군대는 사회적으로 통과의례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회에서 군인권의 문제는 한마디로 금기다. 그것은 분단된 땅이라는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그것에 짓눌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인권을 무시한다고 국방력이 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며 국방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군‘사기’도 군가산점의 부활이나 강화로 더 높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군가산점은 다만 열악한 군복무 환경과 제도 개선에 대한 국가와 정부 당국의 책임을 은폐하고 유예시키는 것 뿐이며 자신에 쏟아질 칼날을 남녀 갈등을 감정적으로 유발하고 장애인,비장애인들의 갈등을 만들어 냄으로써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그것을 표몰이로 이용할 뿐인 것이다.

▲ 오랫동안 내전과 전쟁에 지친 콜럼비아 한 청년이 탈영하며 남긴 시.
꽤나 공부하고 이성적이라는 대학생들도 그 이용의 한가운데에 힘없이 서 있을 뿐이다.
이제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도 빼앗기는 권리에만 민감하지 말고 군인권 개선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장애인 인권을 말하는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의 군환경의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노력과 감수성을 가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군가산점 문제도 오로지 20대의 건장한 1급의 청년들만이 할 수 있는 몫이다. 그들의 폭력적인 목소리에 상처받는 나같은 병역미필자도 그 건장한 청년과 같은 ‘감정’은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군가산점을 부활하면 나는 또 어떻게 할까? 군가산점 폐지가 군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이라 믿기에 나는 또 다시 헌법 소원을 낼 것이다.
수없이 달릴 댓글과 비난에도 이제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군대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치료약을 위해서.

헌법재판소는 1999년 12월 23일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현역 군필자에게 과목별 만점의 5∼3%를 가산해 주도록 한 제대군인지원법 해당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낸 바 있다. 이에 2008년 2월 한나라당 고조흥 의원이 작년 5월 득점의 2%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산점을 주되 적용 대상자가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 위헌논란이 제기돼 처리되지 못했다.

/김형수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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