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통신

흔히 끝자리가 0으로 끝나는 해는 다른 날 보다 뭔가 더 특별하고 기념할 만하게 느껴지곤 한다. 탄생 100주년이나, 사망50주기, 발매 40주년... 원래 10이란 숫자가 사람들에겐 신비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뭔가 완결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2008년은 다른 해에 비해서 유난히 이러한 일들이 많다(물론 클래식에 관련해서). 게다가 관련된 사람들은 소위 ‘거물’들이다. 역사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유독 올해에 줄줄이 모인 것을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서 이번 글에서는 올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사람들을 몇 명 택해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올해는 카라얀이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카라얀은 20세기 클래식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음반산업에 있어서도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사실 카라얀의 인생은 곧 음반산업의 흥망성쇠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생전에 새로운 녹음 기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CD를 개발하던 소니에서 카라얀의 조언을 따라 재생시간을 '합창교향곡이 한 장에들어갈 수 있는' 74분으로 정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카라얀은 사람에 따라 그 평가가 극렬하게 대척하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카라얀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쟁 당시 그의 나치 전력, 눈을 감고 지휘하는 그의 모습, 모든 곡을 너무나 아름답게만 꾸며놓는 지휘스타일에 대해서 불만을 털어놓곤 한다.

하지만 이런 건 결국 어떤 지휘자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얀은 너무나 많은 음반을 녹음했기 때문에 형편없는 결과물이 많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한 연주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수많은 연주 중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베토벤의 교향곡과 R.Strauss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일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독일적인 곡이 카라얀의 연주 성향과 잘 어울린다

 슈트라우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오프닝(카라얀 지휘)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

 카라얀의 숙적 번스타인도 탄생 90주년을 맞았다.사실 번스타인은 카라얀에 가려서 2인자 정도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라얀에 비해서 그렇게 음악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카라얀의 파워가 막강했기 때문에 그의 주 무대인 미국 밖에서는 평가절하된 면이 많다.

오히려 카라얀보다도 더 많은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의 너무나 감정적이고 자의적인 해석 때문에, 그의 수많은 그의 연주는 '졸작'의 평가를 받아야 했다.번스타인의 업적을 꼽으라면 ‘클래식의 대중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를 맨 처음 기획한 흔치 않은 지휘자 중 한 사람이며(지금도 TV용으로 제작한 것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자기가 직접 작품을 남겼는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의 작품은 지금도 자주 연주되는 걸작에 속한다.

그의 연주중에서 우선적으로 들어야 할 것은 구스타프 말러의 녹음이다. 말러가 그리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었던 60년대에 이미 말러 전집(그것도 수준급의)을 녹음했고, 이후에도 두 번 더 녹음할 정도로 말러는 번스타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번째, 비발디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은 올해로 탄생 330주년을 맞았다. 비발디는 사계로 유명하지만, 사실 사계는 그의 많고 많은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는 생전에 253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다. 문제는 모든 곡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점인데, 곡의 구성이나 주제선율이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그 곡이 그 곡 같게 들리는 것이다.

정말 비발디에 대해 특별히 애정이 없는 이상은, 253곡이 아니라 몇 곡도 못 듣고 제풀에 지쳐버리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비발디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당시 비발디만큼 다양한 악기로 협주곡을 작곡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또 협주곡의 구조를 확립시키는 등(3악장, 빠름-느림-빠름) 음악사적으로는 큰 위치에 있기도 하다.


4. 올리비에 메시앙

 

  현대음악의 거장 올리비에 메시앙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위에 나왔던 카라얀과 동년배이다.메시앙은 현대음악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다.

현대음악은 쇤베르크가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었지만, 이를 발전시키고 끊임없이 새롭게 움직여간 것은 메시앙이기 때문이다. 음렬음악이니 총렬음악이니 하는 새로운 작곡기법을 창시하기도 했고, 불레즈나 슈톡하우젠 같은 현대음악의 젊은 피를 양성하기도 했다.

1992년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작곡을 했던, 그야말로 현대음악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다.그의 곡은 다른 현대음악에 비해서 듣기 쉬운 편이다(물론 상대적인 것이고, 현대음악을 들을 때에는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그의 곡은 종교적인 소재에서 따 온 것이 많고, 또 다양한 음색, 특히 새소리를 음악에 녹여내고자 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어떤 곡들은 현대음악임에도(그리고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의 많은 곡 중에서 처음 듣기에 좋은 곡은 ‘아기 예수의 20가지 시선(Vingt regards sur l'enfant-Je'sus)’이다.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의 곡이고, 현대음악 치고는 그다지 이질감이 들지 않는 편이다
.

아기 예수의 20가지 시선’ 중 ‘아버지의 시선’

 

5.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현대음악에서 또 다른 의미의 거장을 꼽자면 슈톡하우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난 12월 사망했다(모차르트의 기일과 같은 날이었다). 동시에, 올해는 그의 탄생 80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슈톡하우젠의 업적은 '전자음악'에 있다. 순수하게 전기를 이용해서 소리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개념을 그가 최초로 시도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구체음악'이라는 것을 고안해 냈는데, 테이프에 여러 소리를 녹음해서 이를 잘라붙이거나 늘이거나 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편집한 뒤에 재생하는 음악을 말한다.

사실, 이런 작업은 지금 우리가 대중음악을 녹음할 때 쓰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슈톡하우젠이 아니었다면 테크노 음악이나 일렉트로니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고까지 한다
.

슈톡하우젠 : 콘탁테
 
이 외에도 각각 푸치니 탄생 150주년, 로시니 사망 140주기, 드뷔시 사망 90주기, 비제 탄생 170주년, 사라사테 사망 100주년, 림스키-코르사코프 사망 100주기, 본 윌리엄스 사망 50주기을 맞았다.
 
2008년에는 여기에 나온 사람들의 음악들을 한번씩 들어봐도 한 해가 다 갈 거 같다. 그 만큼 올해에는 기념할 만한 사람들이 많고, 또 그 사람들은 다들 굵직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말 클래식의 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벌써 1월도 반이 넘게 지나갔지만, 2008년, 즐거운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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