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사이코패스 연쇄살인자의 특징

영화 <추격자>는 국내외를 포함해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을 제대로 다룬 수작 중의 하나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내 생애 최초로 만난 영화 속 연쇄살인자의 추억을 떠올렸다.

1991년, 혼자 영화보기를 즐기던 나는 당시 이화여대 근처 극장에서 상영하던 영화 한편을 생각 없이 보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행복했던 여자>, 자상하고 쾌활하고 능력까지 좋은 남자를 우연히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던 주인공이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실의에 빠지는 장면을 보며 ‘이래서 제목이 행복했던 여자구나...이제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는지를 보여 주려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사실은 미국 전역에 마누라를 두고 사는 다중생활자이자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이는 누구든 무자비하고 지능적으로 살해하는 살인마였던 것이다.

애초에 이러한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그 영화의 평범한 공포효과에 완전히 압도되어버렸다. 여주인공은 코미디 배우로 유명한 골디 혼인데다 <나 홀로 집에>의 자상한 아버지로 익숙한 존 허드가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사이코 살인마를 만나리라고 누가 기대했겠는가. 몇 년 후에 이상심리학 강좌에서 ‘사회병질자’(사이코패스) 부분을 공부하고 나서야 나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이 진단명에 해당하는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사회병질자의 모습에 대해서 나름대로 어떤 뚜렷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었다.

사회병질자는 정신의학적 진단명으로서 매우 위험하고 돌이킬 수 없는 성격적인 결함을 가진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연쇄살인자 대부분이 사회병질자로 진단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 번째, 이들은 지극히 이중적이다. 대부분의 사회병질자들은 겉보기에는 멀쩡하다. 오히려 앞서의 <행복했던 여자>에서 처럼 범죄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인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양면성은 사회병질자들의 매력이자 무기가 된다. 이들의 밝고 순수한 겉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심 결핍의 결과다. 양심이 없으니 죄책감도 없고, 그러니 얼굴에 그늘이 없는 것이다. 덕분에 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난 양갓집 아들딸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피해자들의 경계심을 허문다.

영화 <추격자>에서 지영민(하정우)의 초반 자백에도 불구하고 엄중호(김윤석)가 이를 믿기는커녕 비웃은 이유도, 다른 불쌍한 피해자가 그에게 자발적으로 망치를 건넨 이유도 이 양면성 때문이었다. 형사생활로 잔뼈가 굵은 엄중호의 눈에도 살인범으로 보이지 않는 그를 누가 의심하겠는가.

또한 이들이 가진 이 극단적 양면성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대중문화의 소재가 된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존재를 보면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니까.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인기를 모은 이유도 무자비함과 고상함이라는 기묘한 양면성 때문이 아니었던가.

두 번째, 이들에게 살인이나 범죄는 생활이며,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다. 대부분의 살인은 동기가 있다. 원한이나 치정이 그 동기이고 살인범죄의 80% 이상은 면식범의 소행이다. 따라서 물증보다 정황증거를 뒤지고 주변 인물들을 뒤지다 보면 결국 범인이 잡힌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송강호가 그러지 않던가. 대한민국은 땅이 좁아서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며 뒤지다 보면 결국 잡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연쇄살인범은 다르다. 그들이 살인을 하는 이유는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그저 그게 즐겁거나 필요하기 때문에 할 뿐이다. 영화 <추격자>에서는 붙잡은 연쇄살인자를 조사한 경찰 조서에 범행동기가 없으니까 서장이 채워 넣으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사실이 그렇다. 이렇게 동기가 없는 범죄자에게 동기를 묻다 보면 엉뚱한 동기들이 등장한다.

연쇄살인자가 어떻게 혀를 놀리느냐에 따라 컴퓨터 게임이 원흉이 되기도 하고 가정불화가 만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 결코 동기가 아니다. FBI가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파일링은 사실 마케팅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라이프스타일 분석방법의 일종이다. 연쇄살인도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이고, 따라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중요해졌던 것이다.

세 번째, 연쇄살인자들은 만들어진다기보다는 태어난다. 많은 연구들은 어린 시절에 받은 학대나 심리적 상처가 연쇄살인자를 만들지 않는다고 증언한다. 최초의 FBI 프로파일러가 쓴 책 <마인드헌터>에 따르면 연쇄살인자는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에 방화, 야뇨증, 동물학대 중 하나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자극적인 경험을 찾거나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데서 쾌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이들은 애초부터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추격자>에서 엄중호는 지영민의 자취방을 찾아가서 벽지 뒤에 숨겨진 그림을 발견한다. 네 벽을 전부 뒤덮은 그 망치와 정의 이미지들을 보며 엄중호는 그제야 지영민이 지금까지 자기가 접한 그 어떤 범죄자와도 다른 별개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런 그림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은 결코 그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연쇄살인자가 쉽게 안 잡히는 이유는, 잡히지 않은 인간들만이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쇄살인 후보자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른 단계에서 잡히고 교도소로 간다. 덕분에 그들은 연쇄살인을 저지를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 초기 단계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간 범죄자들은 범죄를 반복하면서 점차 기술이 늘어 숙련된 살인자로 발전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더 잡기 어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을 잡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우리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별히 지능이 높다기 보다는 단순히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상식에 의존한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화 <추격자>에서도 설마 집 마당에 시체를 파묻으랴 했지만, 정말로 집 마당에다 파묻었지 않은가. 그런 식이다. 의도하지 않고 허를 찌르는 거다.

이렇듯 사이코패스에 대한 영화의 관점이 사실적이고, 더구나 영화 속 장소나 정황이 너무나 현실적이기에(망원동 옆 동네인 성산동에 사는 필자에겐 특히 더) 비록 폭력적인 묘사의 수준이나 분량 자체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별로 심하다고 할 수 없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는 충격은 잔인함은 매우 크다.

필자가 아는 지인에 따르면 이 영화가 묘사한 연쇄살인자의 행태나 취조장면 등은 현직 검사도 매우 정확하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어쨌든 이 지나친 현실성이나 그로 인한 너무 쎈 잔인성이 이 영화에 대한 호오를 가르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심리학(그것도 정신병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는 한번 볼 가치가 있다. 사회병질자에 대한 좋은 시청각 자료이니 말이다.

장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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