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즐겁다 - lucid fall

I’m Fine thank you, and you?
지루하게 긴 방학도 끝이 보이고 오랜만에 학교에 나가니 모두가 반갑다. 친근하게 말을 걸고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다. 어떻게 지냈으며, 무얼하고 지냈는지.
지독하게 외로웠고, 끔찍하게 지루했으며, 어떻게 보든지 간에 절대 ‘잘 지낸’ 생활은 아니었지만 그들 앞에서 나는 그저 잘 지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도 별 다른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겹게 강요되어온 주입식 교육의 효과 덕분인지 어쨌는지, 언제나 우리는 Fine, thank you 할 뿐이다.

사람들은 즐겁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불행하면 죄가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월트 디즈니의 유치한 만화마냥 해피엔딩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바쁘지 않아도 바빠야 하고, 기쁘지 않아도 기뻐야 하고,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해야 한다.
‘텔레비전은 내 친구’가 돼 버린 게으르고 할 일 없는 대학생인 까닭에 웬만한 CF 는 인트로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대사를 줄줄 읇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언제나 CF속의 배우들은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등장한다. 이가 훤히 드러나도록 웃고 그 특유의 몸을 뒤로 젖히는 제스쳐까지 함께 등장하면 이건 이제 더 이상 그냥 CF가 아니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들은 집이 망해서 연이자가 50%에 육박하는 고리대를 쓰면서도 활짝 웃고,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센스를 잊지 않는다. 머야, 이건 거의 행복 강박증 수준이다.
내 주변만 봐도 온 몸으로 ‘난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고 있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 뿐이다. 그들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며, 그들은 언제나 쿨하고 (나 처럼 찌질하지 않다.),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며, 지극히 명랑하고 쾌활하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ONE HUNDRED PERCENT PERFECT하다. 그들 옆에서면 나 또한 언제나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양 행세 해야 한다. 외롭다.

행복하지 않아 미안합니다.
누군가 자신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였는지 정확히 말하진 않았지만 술에 취해 아주 슬픈 눈을 하고서는 그렇게 말하니 마음이 저릿했다. 아이쿠 술을 많이 드셨군요. 아 저기 좀 주무셔야 되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워 삼기며 허겁지겁 입막음을 했지만 계속 석연치 않았다.
만약 불행 不幸하다는 것이 단순히 행복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나타낸다면, 나 또한 불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올라오는 행복의 순간이란 얼마나 귀한고 드문 것인데.
미안, 항상 행복하지 않아서. 피곤한 몸 이끌고 아르바이트 가면서 짜증 내는 것도, 내 마음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때때로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것도, 괜히 쿨한 척, 아닌 척 하다 속이 다 썩어 나오는 신음소리도, 모두.
미안, 당신들처럼 항상 행복하지 못해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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