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의 라디오천국 #1

머리가 굵기 시작하면서부터 듣기 시작한 라디오니 내 라디오 경력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라디오는 노는 것도 공부하는 척하며 해야 했던 수험생에겐 최고의 유희이자 사치였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던 대학 신입생에겐 그 희망을 함께하는 친구로, 그리고 서울 한 구석의 소방서에서 2009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금의 군바리에겐 애인같은 존재로 10년 동안 내 곁에 항상 있어왔다. 지금도 하루에 4~5시간은 족히 라디오를 들으니, 이정도면 스스로에게 'Radioholic' 이라는 별명을 붙여줘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라디오홀릭에게 요즘, 눈에 들어오는 뉴스가 하나 생겼다. 라디오가 ‘부활’했단다.

라디오가 부활했다고....?

그 시작은 누가 뭐래도 지난 2006년 개봉했던 영화 「라디오 스타」다. 거친 카메라 워크에 엉성한 편집과 다소 작위적인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순전히 내 관점에서의 영화평이니 화내지 마시길) 무려 12주 동안 장기 상영되며 단박에 라디오란 ‘올드’한 매체를 가장 ‘핫’한 매체로 끌어 올렸다. 이때부터 ‘라디오 부활론’은 꿈틀대기 시작했다. 올 초 개봉한 영화 「라듸오 데이즈」를 필두로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뮤지컬 「라디오 스타」, 곧 오픈하는 뮤지컬 「온에어」등이 선보이며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언론들이 ‘다시 꽃핀 라디오 시대’ 등의 제목아래 잊혀졌던 라디오가 매체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앞 다투어 보도하면서 ‘라디오 부활론’은 절정에 오른 듯 하다. 하지만 진짜로, 정말, 참말로, 라디오는 부활한 것일까?

▲ 라디오 부활론은 기실 라디오가 아닌 라디오를 이용한 대중문화에 맞춰져 있다.

글쎄.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글쎄올시다’다. 라디오 부활론은 초점이 ‘라디오’에 맞춰져 있는 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디오가 아니라 ‘라디오를 이용한 대중문화’가 그 대상인 담론인 것이다. ‘디지털’이란 괴물은 정말 ‘디지’게 빠른 놈이어서 빠르기라면 세계최고인 대한민국 사람들이라 해도 쉬이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쳐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느림’을 바라게 됐고, 대중문화가 그 느림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소재가 바로 라디오였을 뿐이다. ‘라디오 부활론’은 한마디로, ‘구라’다.

그런데 뭔가 좀 거슬린다

사실 ‘라디오 부활론’ 이라는 말은 라디오를 좋아하는 내게 상당히 거슬리는 표현이다. 부활이란 단어는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매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가 언제 죽었던가? 영국그룹 ‘Offspring'이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고 외치던 때부터였던가?
 
라디오가 예전의 명성만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건 다매체 시대로의 변화에 걸맞은 당연한 결과다. 식상해진 멀티플레이어란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길 원하고 있고 그건 매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라디오를 들으며 신문을 읽고, TV를 보면서 인터넷을 사용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TV와 인터넷을 결합한 IPTV는 이러한 시대 흐름을 잘 보여주는 매체다. 보다 많은 매체가 시장으로 진입하고, 소바자들은 보다 많은 매체를 동시다발적으로 소비하길 원한다. 이에 지배적인 매체는 사라지고, 단일 매체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매체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매체간의 합종연횡을 통해 만들어지는 교집합을 바라봐야하고, 매체의 영향력, 혹은 역동성은 그 교집합의 개수로 판단해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라디오가 만들어가고 있는 교집합은 가장 다양하고, 가장 성공적이다.

부활이란 단어는 라디오와 어울리지 않아

이제 도입된 지 약 2년쯤 된 KBS의 콩, MBC의 미니, SBS의 고릴라 등의 인터넷라디오는 그 가장 좋은 예다. 기존의 FM 라디오 보다 훨씬 좋은 음질로, 여러 가지 정보를 함께 제공하며,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라디오를 즐길 수 있게 한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인터넷 라디오의 선구자인 MBC의 ‘미니’가 서비스 15개월만에 5백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은 인터넷 라디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 인터넷 라디오는 세계 30여개 국 이상에서 사용할 만큼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하나의 교집합을 꼽으라면 바로 ‘보이는 라디오’다. 인터넷, TV, 라디오 이렇게 3가지의 매체의 교집합인 보이는 라디오는 말 그대로 라디오가 방송되는 스튜디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소리’에만 머물러 있던 라디오라는 매체를 ‘영상’의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음악이 나가는 도중에 간식을 먹는 스튜디오의 풍경이라든지, 열창하는 가수의 모습과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듣는 라디오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선한 경험이다. 

방송에 문자메시지, 즉 휴대폰이란 매체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도 라디오다.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의 필수 프로그램은 문자 사연을 소개하는 코너이며, 인기 프로그램의 경우 2시간 동안 8천여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하기도 한다고 하니 정말 성공적인 교집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디오에만 ‘위기’, 혹은 ‘죽음’ 이란 수사(修辭)를 붙이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모든 매체의 위기이자, 모든 매체의 기회인 시대가 도래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라디오는 그 위기를 정말 잘 헤쳐가고 있는 매체 중에 하나다. 그러니 이제부턴 라디오에게 부활이란 단어를 붙이지 말자. 그것은, 라디오에 대한 실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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