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의 강의노트]내가 영어 수업을 하기로 한 이유

 

1. 웬 영어 강의?

지난 학기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에서 학내 영어 강좌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학생들은 영어 강좌의 상당수가 영어 공부도 안 되고 전공 진도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면서, 각 수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코미디 같은 경험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교수가 ‘next week’, ‘paris’ 등의 단어가 들어간 말을 하자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다음 주는 휴강한다는 말이라고 짐작을 하고 수업에 안 들어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 영어로 된 파워포인트만 보면서 교수의 ‘next, next’라는 영어만 듣다 교수가 “any questions?”라고 말하고 끝나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주눅이 들어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재 대학 영어 강좌가 얼마나 표류하고 있는지를 보며주는 단면이다. 학생들은 그나마 절대 평가로 학점을 주기에 영어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영어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국가와 개인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영어가 곧 국가 경쟁력이고 영어가 곧 대학경쟁력인 듯 온 사회가 부산을 떠는 가운데 정작 학생들은 불안하기만 하지, 영어도, 실제 중요한 내용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그간 영어 강의를 한국에서는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깨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영어가 우리 안에 있을 것이라면 제대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활용하면서 글로벌 교육을 해가자는 것이다.

 연세 대학은 20년 전부터 국제학대학원을 만들어 영어로 교육을 해왔다.  최근에는 영어로만 교육을 하는 학부 언더우드 컬리지도 만들고, 송도 글로벌 캠퍼스를 만드느라 분주한 가운데 있다. 우리 대학의 교환학생 제도는 아주 모범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일찍부터 코스모폴리탄 인재를 길러내 온 우리 대학의 이러한 전통에 대해 나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연대에서 영어 강의를 한 적이 없다. 국제학 대학원이 생길 때부터 영어로 강의를 하라는 권유를 받아왔지만 번번이 거절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영어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국가와 개인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일단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 영어 강의를 하면 한국어로 할 때보다 개념을 잘 전달해낼 리가 없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영어로 강의를 해야겠지만 한국말을 더 잘하는 학생들을 놓고 구태여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 모두 완벽하게 구사하거나 영어만 잘하는 사람일 경우 영어 강의를 하면 될 것이고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회 변화와 그것을 읽어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인문사회 수업의 경우, 단어 하나로 엄청난 것을 말해주고 또한 ‘뉘앙스’가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학습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언어로 개념을 소개해주어야 한다. 연세대 안에 영어로만 교육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 좋은 일이고 한 캠퍼스 안에 ‘다양성’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내가 구태여 영어 강의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학자란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사람이고, 명확한 개념 사용을 위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언어를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머리만 나빠질 일이라 생각해서 거리를 두어왔다. 그래서 나는 십년 전부터는 외국에서 발표할 논문은 일단 번역을 잘 하는 분에게 번역을 하게 하였고, 외국에 가서 한국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 특히 영어만 알아듣는 청중들만 있을 때만 영어로 강의를 하였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학생들을 앞에 놓고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것은 연극을 하는 일일 터인데 나는 그런 연극을 구태여 할 이유를 못 찾았던 것이다.

/ 출처 한국일보
차분하게 한국어로 공부하고 교환학생을 갔다 오면 다들 문제없이 영어를 구사하게 되고, 교환학생을 안 가도 대학을 졸업하면 세계 어디에 가도 뒤지지 않는 글로벌 인재들이 되는 제자들을 보아온 나로서는 현재 대학에서 불고 있는 영어강좌에 대한 정책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적 경험을 보아도 유학을 가기 위해 별다른 영어공부를 한 적이 없고, 딱히 남보다 열심히 한 것이 있다면 원서를 조금 더 읽었고, 그 외 영어 팝송을 많이 외워 불렀을 뿐인데 미국에 유학을 가서 별 문제 없이 적응을 했고, 그곳 교수들은 내가 영어를 아주 잘 쓴다고 칭찬들을 하곤 하였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내가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글에서 멋을 부리지 않고 간결한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 세계화

물론 유학을 나가는 ‘아웃바운드’ 만이 아니라 ‘인바운드 세계화’도 있다. 최근 우리 대학이 영어 강좌를 강조하는 것은 모든 재학생들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동시에 외국에서 유학생들을 끌어들여 ‘경쟁력 있는 글로벌 대학’을 만들겠다는 목적도 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학생들이 엄청난 돈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외화 유출을 막을 방도를 찾고 있으며, 특히 현지 영어 연수 교육을 통해 국가수입을 늘이려고 온갖 방법을 고안해내고 있는 영국이나 호주 등 영어권 국가의 정책이 공격적인 만큼, 자국 안에서 영어 교육을 해내려는 정책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시대 대학경쟁력을 기르겠다는 목적 아래, 교육인적 자원부나 여타 세계 대학 평가 시스템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의 수와 영어 강좌 수를 대학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모든 대학들은 영어 강좌수를 늘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연대와는 역사적으로 시너지를 내는 관계인 ‘민족 고대’가 ‘글로벌 고대’로 ‘무리하게’ 변신을 꾀하면서 ‘영어 강좌 수’를 중심으로 한 경쟁이 붙어버린 면도 있다. 

 인구, 문화, 기술의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 또한 전 세계 인구의 1/4 이상이 영어를 사용하고 영미권의 권력이 갈수록 세지는 상황에서, ‘영어’는 세계 공용어처럼 활용되고 있고, 이에 따라 ‘영어교육 열풍’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국경의 넘나드는 인구들은 점점 많아지고, 아주 다른 언어 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에서 영어 수업을 비롯한 외국어 수업을 늘여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상 글로벌 바람이 불기 전부터 대부분의 학과 수업에서 읽는 책들은 영어책이거나 번역본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말만 한국어로 해왔지, 내용상으로는 상당히 외국 의존적인 수업을 해왔던 것이다. 자세하게 구분을 해보면 강의는 한국어로 하되 영어 텍스트에 크게 의존해온 수업, 한국어로 하되 한국어 텍스트만 읽은 수업, 영어로 수업을 하고 영어 텍스트만 읽는 수업 등으로 분류가 된다.

▲ 한국사회는 유치원생들에게도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 대학에서는 지난 달, 학과가 개설하는 강좌의 30%를 영어 강의로 해서 영어로만 듣고도 졸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려 한다는 메일을 교수들에게 보내왔고, 기본적으로 나는 그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내에 그런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마침 또 송도 캠퍼스를 글로벌 캠퍼스로 하려는 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영어나 중국어 등으로만 수업을 받고 졸업할 사람들을 하나의 트랙으로 묶는 방식이 될 수 있고, 이것이 학생들을 위해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영어(외국어) 강좌를 늘이고 학위를 주려는 이러한 변화가 다양성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위계서열화하거나 학문의 식민지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성이다. 달리 말해서 영어 수업은 글로벌 시대에 맞는 다양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 대학에서는 이 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번 학기에 영어 수업을 통해 이런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바람직한 영어 강좌 제도의 방식을 찾아보고자 한다. 마침 이번 학기부터 우리 대학에서는 단순히 영어 강좌가 아닌, 내용상의 질적 향상을 위해 UC 버클리 대학 교수와 우리 대학 교수가 함께 진행하는 강좌를 권유해왔다. 나는 평소 친분이 있고 대학의 글로벌리제이션 작업을 실제로 추진해온 존 리 John Lie 교수와 함께 하면 학생들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를 초대했다. 주제는 “글로벌 시대의 대학, 문화 그리고 영어”이며, 이 수업은 내가 전반부에, 존 리 교수가 후반부에 15시간을 맡아 가르치는 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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