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평가, 학습권 침해와 보장의 길목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열등반 학생입니다” 지난 2월 12일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이 종합관 언덕에 걸렸다. 이날은 08학번 새내기들이 영어진단평가를 보는 날이었다. 새내기들과 부모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종합관 언덕. 새내기들은 현수막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단평가는 그냥 진단만 해주는 거 아닌가? 재학생들은 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새로운 시험이 생겼다더니 열등반도 생겼나?
배치고사? 수강신청자율권?
학부대학에서 처음 내놓은 진단평가의 본래 명칭은 ‘배치고사’였다. 이후 중앙운영위원회의 항의로 ‘진단평가’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준별교육보다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권리인 학습권이 더 소중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상,중,하로 강제분반되었던 ‘수준별분반’은 학생들이 자신의 레벨에 맞추어 수강신청을 추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단, 최상반과 하반(상위 10%와 하위5%)은 수강신청자율권에서 제외되었다.
교육과학대학 회장 김영종(사학·06)씨는 “명칭이 배치고사일때는 성적대로 나누어서 최상,상,중,하로 나뉘어 수업선택권이 침해된다”며 “시험을 본다면 그 결과가 강제분반이 아니라 영어 실력만을 측정하는 데 그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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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상대평가 나는 절대평가
학부대학측은 고급대학영어(이하 상반)는 절대평가, 대학영어(이하 중반)는 상대평가로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준도 어렵고 과제도 많은 상반을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라고 박형지 교수(문과대·영문과)는 말했다. 그는 “자율권이 아예 없다면 굳이 인센티브를 줄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고급대학영어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진단평가를 보지 않고 기존안대로 반을 배정받았다면 그냥 우수한 성적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가방식에 대한 공지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인예은(이학계열·08)씨는 “고급대학영어반만 절대평가인줄은 몰랐다”며“그냥 분반만 해준거 아니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허수웅(공학계열·08)씨 역시 “수준과 맞는 수업을 들어야 따라가기 쉽다”고 하면서도 “절대평가가 시행되는지는 몰랐다”며 의아해했다.
상대평가제도가 도입된 이후 아무리 열심히 해도 C를 맞는 사람은 있다는 위기감이 학생들 사이에 팽배하다. 전공4000단위정도의 과목과 기존 심화과목들은 절대평가가 허용되지만 학부생 전체의 25%가 듣는 학부기초과목에 절대평가제가 도입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영어는 절대평가 수학은 계절학기 Go Go
다른 단과대들에게는 진단평가가 생소한 개념일 수 있으나 이학·공학계열은 이미 수학 ‘Placement Test'(이하 수학진단평가)가 0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05년은 이공계, 06년은 시행되지 않고 07년엔 공학계열만 시행되었다.그리고 올해 이학,공학,생명시스템,의,치예계열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수학진단평가가 시행되었다.
학번 | 시행여부 |
05 | 이학,공학계열 |
06 | 시행되지않음 |
07 | 공학계열 |
08 | 이학,공학,의학,치의학 |
고등학교 과정 중 미분과 적분이 필수과목에서 빠지면서 수학과목의 수준별 학습에 이공계 학생들도 필요성을 공감하는 추세다. 공과대 학생회장 김민아(생명공학·05)씨는 “수학분반이 되지 않으면 수업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학진단평가 역시 시험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못하면 계절학기를 반강제적으로 이수해야하는 문제점이 있다. 수학진단평가는 핵심미적분학 수강반을 상(2분반),중(20분반),하반(2분반)으로 나누는데 하반의 학생은 이 과목을 사실상 수강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된다. 공학수학Ⅰ과 공학수학Ⅱ가 각각 1,2학기에만 개설되는 관계로 하반 학생은 여름계절학기를 듣지 않으면 전공을 배정받을 수 없다. 학부대학 관계자는 “문제점은 공감하고 있으나 워낙 커리큘럼이 빡빡하다”며 “해결방안을 검토중”이라 밝혔다.
06,07년에는 수학진단평가가 없었던 이과대의 경우 이과대학생회장 이지혜(수학·05)씨는 “수준별 분반 의도는 좋다”며 “그러나 공대와 같은 계절학기 문제가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이민석(이학계열·08)씨는 “성적이 안되면 계절학기를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건 알고 있었다”며 “실력 향상을 위해선 감수해야 되는 문제”라고 했으나 이민웅(전기전자공학·08)씨는 “성적 때문에 계절학기까지 추가로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진단평가, 학습권 보장과 침해의 길목에서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을 지루하게 듣고 있어야 하는 영어 잘하는 학생도, 잘 못알아듣지만 사람들이 웃을 때 함께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영어 못하는 학생도 수준별 학습이 필요하다. 박형지 교수는 “수준별 강의로 전체 학생의 96%는 이익을 본다”며 “기초교양 2학점도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강과목 추천은 우리대학교 전체 학부생을 기준으로 퍼센테이지를 나눈 반면 수업은 단과대단위로 미리 고급대학영어와 대학영어수업을 짜놓기 때문에 예측이 빗나갈 우려가 있다. 박교수는 “약 4개반 정도가 추가로 개설될 예정”이라며 “향후 몇 년간 통계가 쌓인다면 극복할 수 있을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가는 2월에 하는데 수강편람은 11월에 짜여져 반이 추가로 개설된다고 해도 교수들이 수업준비가 미비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러한 행정상의 문제 말고도 영어라는 과목의 특성상 가정환경에 따라 해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영어실력이 좋은 점을 감안한다면 상반-절대평가, 중반-상대평가식의 평가방식도 ‘인센티브’로만 설명될 수 없다. 또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수학진단평가의 경우 평가에 의해 약 40만원의 계절학기 비용과 한달남짓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평가가 당연해진 시대에, 특히 막 수능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시험 중 하나를 치르고 난 새내기들은 당연하게 “진단평가가 뭐가 문제에요?”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대학교 뿐만 아니라 서울대에서도 배치고사를 통해 기초반 수강자는 심화반을 따로 이수하도록 되어있고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기초는 기초반, 심화는 심화반만 수강신청하도록 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익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 아니냐”고 소혜정(경제·07)씨는 말했다.
그러나 교수와의 수업을 통해 받는 ‘피드백’적 요소가 강한 평가와 입학하자마자 반을 ‘배치당하는’ 식의 평가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평가방식이 갈리는 상황에서의 경쟁은 학점이라는 이익을 두고 벌이는 경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학습권은 누구로부터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가 아니다. 스스로 찾아나가는 권리다.
진단평가가 뭐니? 진단평가는 08학번부터 시행되는 학부기초 영어과목 수준별 분반을 위한 평가다. 평가항목은 글쓰기와 말하기이다. 시험문제는 ‘주어진 글을 읽은 뒤에 지시에 따라 약 400-500단어의 영문 에세이를 작성하라’과 같은 형식이다. 수능형 객관식에 익숙해진 새내기들이라면 적이 생소할만한 문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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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 기자 xllmailllx@yonsei.ac.kr
/사진 김가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