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각 사장 주기준씨를 만나다

우리대학교에서 복성각 모르는 사람은 간첩일 거다. 송년회, 신년회, 개강파티, 생일파티, 심지어 조모임까지. 그곳에선 ‘역사’가 만들어진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칼라 자장을 만들어내는 곳. 광어살로 덮밥을 만든 ‘해위면’, 기름이 아닌 물로 볶아 국물을 자작하게 만든 ‘수초면’의 발원지. 군대 간 우리학교 학생들이 가장 그리워는 것 중에 하나라는 그곳의 탕수육. 오늘 그 모든 것을 일구어낸 장본인을 만났다.

SINCE 1953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2층 구석의 자그마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만한 쪽방하나가 나타났다. 사장 주기준(50)씨가 조리실장과 얘기를 나누다 머리를 들고 반긴다. 올해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

주씨는 충청도가 고향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었어요" 빚 때문에 아버지가 원래 하던 중국집도 처분했었다. 학교도 다닐 형편이 못됐다. 아는 사람 소개로 열두 살 나이에 부산까지 내려가 물만두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고생길 열렸던 거죠(웃음)." '땡전 한 푼'없는 상황이었기에 절박했다. 개, 소, 돼지를 키워 팔기도 했고 여름에는 리어카에서 수박을 팔기도 했다. "어떻게든 성공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일일이 말로 옮기자면 너무 길어진다며 계속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버지와 함께 다시 중국집을 차렸다. 대표적 서민음식인 자장면을 최대한 싸고 맛있게 공급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남들하고 똑같은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주씨는 남다른 가게 운영 방식을 보여준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외식산업 분야에서 오직 중국집만 바뀌질 않아요. 처음 생긴 100년 전과 비교해 봐도 메뉴든 뭐든 달라진 게 거의 없죠.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씨는 노력했다. 70년 대 당시에 과감하게 초록색 등을 컨셉으로 잡아 인테리어를 했고 단무지, 김치 대신 양배추볶음과 땅콩절임 등을 밑반찬으로 내놨다. 손님들 반응은 좋았냐는 질문에 "아뇨, 시골이라 그런지 안 멕히대요"라며 껄껄 웃는다.

주씨는 사실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가 중국인인 대만 국적의 화교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집을 사는 것은 물론 은행 대출 같은 것도 되지 않아 사업가로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국민연금, 주민세 등의 모든 세금을 한국인과 똑같이 납부하는데도 제재가 심하니 억울하죠." 박정희 대통령은 물가상승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자장면값 동결' 정책을 펴기도 했다. 모두 화교 배척 정책의 일환이었다. 회사에 취직하는 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한국인들도 취직 못해 난린데 굳이 우리를 쓰겠어요?" 그래서 한의사나 관광 가이드가 된 일부를 빼면 한국 화교들 대부분은 자영업에 종사한다. 주씨의 하나 뿐인 아들도 서울 모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인재지만 애초부터 취직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올림픽이 한창이던 88년,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홍대 정문 앞에 가게를 열었다. 가히 '성공시대'가 도래했다고나 할까. ‘일품향’이라는 이름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중국집 ‘일품정’이 있다. 주씨가 운영하다 지인에게 넘긴 곳인데, 이곳 역시 현재 블로거들과 맛집다큐의 찬사를 받는 A급 중국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주씨가 직접 도안했던 가게 인테리어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대로’ 남아있다) 신촌에 입성한 것은 10년여 후인 2000년 8월, 지금의 할리스커피 자리에서 시작했다. 1년 반 정도가 지난 뒤에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사실 신촌로에서 약간 떨어진 구석진 위치의 현 건물에는 망해가던 호프와 껍데기집이 있었단다. 신통치 않던 건물 지하에서 시작해 한층 한층 ‘잠식’해왔다니, 웬만한 수완이 아니고선 못해낼 일들이다.

여기까지 온 비결은 무얼까. 저렴한 가격? 맛? 분위기? 우선 복성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중국에서 온 것이다. 각종 석상, 문짝, 등, 탁자, 의자, 신 메뉴의 소스와 향료 등을 공수하는 데 지금까지 세 개의 컨테이너가 동원됐다. 가게의 전체 디자인을 담당하는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냐는 질문에 “아뇨. 제가 직접 다 합니다” “이 명함도요?” “네. 하도 꾸미는 걸 좋아해서 돈이 생겼다 싶으면 그런 거 새로 만들고 사 모으는데 다 써요” 오늘도 그가 직접 디자인한 종업원들의 새 유니폼이 중국에서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에겐 언제든 ‘차별화’가 최대의 기치다.

팝페라 마니아이자 왕년에는 모델 제의도 받아봤을 정도로 패션 감각이 수준급인 주씨는 학생들의 감각에 맞추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 항시 가게에 음악이 틀어져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경양식집인지 중국집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또는 ‘시끄러우니 볼륨을 낮춰 달라’는 ‘어른’손님들의 요구에 ‘이게 우리 컨셉이예요’라며 응수한 것은 그 팬 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복성각을 자주 찾는 이들은 음식맛보다도 오묘한 분위기가 일품이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달 전 대학로에 복성각 2호점을 열었다. 더 많은 학교 앞에 복성각을 세우고 싶단다. “쑥스럽지만, 대학가 마다 꼭 하나씩은 위치한 ‘민들레영토’ 같은 곳으로 만드는 게 제 최종 목표예요” 그래서 주씨는 항상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 언제나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무일푼이던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준 게 다 연대생들 덕분이잖아요”라며 인터뷰 초반 기자에게 “학교에 장학금 같은 것 주고 싶으면 어디다 연락해야 돼요?”하고 먼저 물어오기도 했다. 그는 우리대학교 탁구동아리 ‘임팩트’에 매달 10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이화여대 ‘아름다운 밥상’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모금에 참여해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그 조그마한 쪽방에도 대여섯 개의 ‘표창장’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요즘 그가 또 품고 있는 아이디어들을 잠깐만 들여다보자. 첫째는 건물 앞의 주차장을 중국 문화를 소개하는 책들로 꽉 채우고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독서공간으로 만들어보려는 계획이다. ‘가방끈이 짧아’ 쉽지가 않다며 허허롭게 웃는다. 더불어 매년 ‘생각에만 그친다는’ 두 번째 생각. 바로 대동제 기간에 우리학교 정문에서 신촌역까지 하나의 기다란 면발을 연결해 성대한 ‘짜장파티(!)’를 열고 싶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긴 자장면’ 기네스기록에도 도전하고 싶고, 그 긴 면발 중간에 그릇을 받치고 툭툭 잘라 학생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도 보고 싶단다. 이건 좀 허무맹랑하다고? 글쎄, 그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글 이지숙 기자 bright@yonsei.ac.kr

/사진 조형준 기자 soar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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