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 김영아 정기자

기자로서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 한 번 한 번의 취재는 하나하나 배워가는 기회와 같다.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빨리 중도 앞으로 가봐.” 부장의 문자였다. 오 분도 안되는 시간, 반 그릇도 채 비우지 못한 채 카메라를 들고 학생식당을 뛰쳐나왔다. 중앙도서관 앞에는 다른 기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장애인 주차구역인데 누가 여기다 주차해놨어요. 이거 포토뉴스 감으로 좋을 것 같아서 급하게 불렀어요. 얼른 찍어요!”
몇장 쯤 찍었을까. 이제 됐다 싶었을 때 쯤 누군가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저기요! 왜 그러시죠?” 내가 찍었던 차의 주인이었다. 교내 주차도우미는 상황을 설명해줬고 차를 빼 줄 것을 요구했다. 상황은 종료되는 듯했다.
“잠깐만요, 근데 사진은 왜 찍으신거죠?”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내가 「연세춘추」 사진기자이고, 불법 주차 문제 때문에 취재차 사진을 찍었다고 찬찬히 설명했다. 차주는 잠깐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기자증을 보여 달라며, 기자증이 없다면 주민등록증이든 학생증이든 신분확인을 요구했다. 기자증이 없었던 나는 「연세춘추」의 이름이 찍힌 명함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명함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 요즘은 가짜 명함이 많아 못 믿겠다, 얼굴이 붙어있는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술집에서는 무던히도 꺼내던 주민등록증이었지만, 자신의 잘못은 뒤로한 채 요구만 하는 취재원에 왠지 알량한 자존심이 발동해 보여주기가 싫었다. 끝까지 보여 달라던 취재원과 끝까지 버티던 나는 결국 「연세춘추」 홈페이지에서 기자소개를 확인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진짜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취재원은 또 다른 요구를 했다. ‘각서’를 써달라는 것.
이 사진을 신문게재 이외의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내라고 했다. 각서를 쓰지 않겠다면 사진을 지우라며.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기자교육도 안 받았냐’며 나를 하나하나 가르치려하고, 자신의 잘못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프라이버시만 지켜지길 강요하는 취재원의 모습에서는 아이러니가 묻어났다.다른 용도로 사진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던 나는 갑자기 자존심이 상했다. ‘취재’를 했다는 이유로 내가 가짜 명함을 만들고 기자를 사칭하는 사기꾼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 난 결국 자존심 때문에 사진을 지웠고, 그 사진은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그때는 사진을 지우는 것이 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옳지 못했다. 사진을 지우는 순간, 기자로서의 내 자존심도 함께 지워버린 것이었다.
나는 사진을 지켜야 했다. 각서를 써 주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내 사진을 끝까지 지켜 신문에 싣는 것이 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억울하고 분하다며 가슴을 치고 펑펑 울어도 지워진 사진은 돌이킬 수 없었다. 당시의 취재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줬다. 내가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순간에 ‘진짜’자존심을 지키는 법. 억울함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성장시켜준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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