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트너가 갑작스레 병원에 실려가 한밤중에 입원을 하게 됐다. 입원을 하기 위해서는 동의서를 써야 하는데 병원측에서는 우리가 가족 이상의 사이라고 말을 해도 둘은 친구사이일 뿐이라며 사인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100만원 가량의 보증금을 내면 입원 동의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친한 게이에게 연락을 해서 그가 남편인 것처럼 말을 해 입원을 할 수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레즈비언 이아무개(29)씨

“사회 보장과 관련된 차별도 매우 크다. 국민연금의 경우 내가 이제까지 1500만원 가량을 납부했는데, 내가 사망하더라도 동성 배우자는 이를 받을 수 없다고 국민연금공단측은 말했다. 또 결혼 전에 들었던 각종 보험의 경우 수익자가 법정 상속인으로 돼 있었는데, 결혼 후에 일일이 내 파트너를 친구관계로서 상속인이 될 수 있게 새로 지정해야만 했다.”

-게이 허아무개(45)씨

위 내용은 지난해 5월 대학로 글로브소극장에서 열린 동성애자 가족구성 발표대회 ‘스피크 아웃!’에서 동성애 가족들이 겪었던 제도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시대에 뒤쳐진 법앞에서 차별받는 그들

 

“누구 좋아해본 적 있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감정은 어쩌다보니 생기는 거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동성 파트너와 11년간 같이 살고 있는 이진우(35)씨의 말이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파트너와 같이 살며 서로 힘든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 “똑같아요. 싸우기도 하고 토닥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사는거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성애 가족은 우리사회에서 법적으로 하나의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가족구성권이 인정되지 않다보니 우리사회의 제도 내에서 이뤄지는 차별 역시 당연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동성 배우자는 수술 여부와 치료 여부 등 모든 의료과정에 있어서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행법상으로 동성애 가족의 의료결정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성애 가족은 의료보험, 국민연금과 같은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에서도 차별받는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경우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와 같은 혈연 가족 개념에 근거해 피부양자를 인정한다. 하지만 동성애 가족같이 생계를 함께하지만 혈연 가족 개념에 적용되지 않는 가족구성원은 피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럴 경우 실질적인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와 보험료를 따로 내야하는 것이다. 혈연관계와 이성애관계를 중심으로 한 현재 가족제도는 동성애 가족뿐만 아니라 장애인 공동체와 같은 다양한 가족 공동체에게도 제도적 차별로 작용한다.

 

그들에게 닫힌 사회 그리고 열린 사회

 

지난 2004년에는 사회 통념상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국내 법원의 첫번째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사회의 법과 제도는 동성애 가족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국은 동성결혼을 이성결혼과 법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그밖에 영국, 독일, 프랑스, 포르투칼 등의 국가들은 ‘시민동반자법’, ‘시민연대협정(Pacte Civile de Solidarite, 아래 팍스법)’ 등의 제도를 통해 동성애 가족에 대해 일정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절충안을 택하고 있다. 혈연과 이성애를 기준으로 하던 기존의 가족형태를 벗어난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한 것이다. 캐나다의 경우 퀘벡주에서 1999년 이성 배우자와 동성 배우자의 법적 지위는 동등하다고 인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지역이 조세, 연금, 의료, 보험의 분야에서 동성 배우자의 평등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역시 ‘팍스법’을 통해 재산권, 사회보장, 조세분야에 있어 동성애 가족들에게 혈연 가족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애 가족의 상속권과 입양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4년에는 미 의회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평등을 향한 움직임, 그리고 희망

 

현재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성소수자 위원회’,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여성학자, 변호사들이 모여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을 갖고 있다. 지난해 열린 동성애자 가족구성 발표대회 ‘스피크 아웃!’이나 동성애자가 선정한 ‘예쁜 가족 대회’ 역시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족들을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었다. 매년 6월 열리는 ‘퀴어문화 축제’도 동성애 문화에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외침이다. 동성애 가족에 대해 아직은 닫혀있는 사회지만 동성애 가족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대표 이종헌씨는 “동성애 커플들이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가족구성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공동체라는 관계 속에서 동성애 배우자가 사회의 동반자임을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위원장 최현숙씨는 우리사회의 통념에 대해 “호주제 폐지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호주제는 폐지됐다”며 “언젠가 우리사회에서 다양한 가족구성권도 인정받을 것이다”라 말했다.

/김용민 기자 sinsung7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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