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손혜령

지금 이순간,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희생당하고 있다. 여기서 희생이란 마르크스주의자의 말처럼 당신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시급 4,100원의 기계로 희생당하고 있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당신을 자신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사람은 평생 옷깃 한 번 스치지 않을 운명인 사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 당신의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타인의 은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뒷담화’를 통해서.
본디 표준어는 뒷공론이지만, 일반적으로 ‘뒷담화’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뒷담화는 주로 제3자에 대해 몰래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 뒷담화를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이 방영됐을 정도로 뒷담화는 우리의 주위에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먼 옛날부터 며느리들이 모여 시어머니 뒷담화를 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던 것처럼 뒷담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러한 뒷담화가 벌어지는 이면에는 사람들의 어떤 심리가 숨어있는 것일까?
뒷담화를 프랑스의 석학으로 일컬어지는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서강대학교 철학과 김봉규 강사가 “희생양 이론은 뒷담화 등 일상생활에 숨어있는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기도 하다”고 언급한 것처럼, 희생양 이론으로 인류의 기원을 포함해 인류의 총체적인 사태를 설명할 수 있다.
르네 지라르는 그의 저서인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고대사회의 종교적 행사를 단순히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제사를 주최하는 사람들이 만든 ‘성스러움’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희생물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희생물에게 폭력, 즉 죽음을 가함으로써 고대사회가 안정을 얻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전염병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는 마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무고한 희생양을 제공해 사회의 안정을 꾀했다.
중세시대 뿐 아니라 이런 희생양 이데올로기는 인류가 존재한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지난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미국은 동맹국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자국의 실리를 얻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의하면, 뒷담화는 뒷담화가 행해지는 공동체 내에서 동질감을 얻고자 행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제3자를 공격해 우리는 그와 다르다는 정당성을 획득하려 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뒷담화는 우리의 숨겨진 욕망들을 충족하기 위한 하나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 지라르의 저서들을 번역한 울산대학교 프랑스어·프랑스학과 김진식 교수는 “뒷담화가 그 대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의미일 경우, 일인에 대한 다수의 박해, 즉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인 <희생양 메커니즘>의 한 예가 충분히 될 수 있다”며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 파고드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생에게 꼭 필요한 작업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뒷담화는 그 수준에 차이가 있다. 당사자가 존재하는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농담 따먹기’ 식의 뒷담화가 있는가 하면, 당사자가 존재한다면 얼굴을 붉힐 정도로 심한 뒷담화도 있다. 전자의 뒷담화야 재밌게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후자는 순간의 욕망을 위해 희생시키기엔 당사자에게 너무나 큰 폭력이다. ‘발랄’과 ‘칼날’의 줄다리기 속에서 우리가 당겨야 할 줄은 어떤 것인지 우리 스스로 성찰해봐야할 것이다.

/최지웅 기자 cacawo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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