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동인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오른 김중혁, 디지털과 아날로그 속 그가 꿈꾸는 것은?

외국 출장 중인 한 여성, 원격 조종 화면을 통해 멀리 떨어진 딸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이는 더 이상 광고의 세계에서나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네트워크 환경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인 유비쿼터스(Ubiquitous)가 21세기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기술은 아파트, 병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이어 주는 수단이 돼주고 있다. 현대 문명의 상징, 유비쿼터스. 그러나 여기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유비쿼터스의 허점과 채워진 듯 하나 알 수 없는 부족함과 허전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김중혁.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 『펭귄뉴스』의 저자 김중혁. 그는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소설가로 활동중인 멀티플레이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그를 만나다

신시가지가 생기기 이전에 존재했던 서당 때문에 이름 지어진 문촌(文村)마을을 지나 일산 최대의 문화와 축제의 거리인 라페스타(Lafesta)에 도착하니, 디지털 카메라와 mp3 등 각종 디지털 기기를 몸에 지닌 한 남자가 서 있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자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수고 하셨을텐데, 식사는 하셨나요?”

소설 속에서 ‘가장 안전한 컴퓨터란 꺼진 컴퓨터다’라는 글귀를 보아서일까. 한없이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이미지만을 예상하고 있었던 기자에게 김 작가의 환한 웃음은 이전의 긴장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활기를 되찾아주었다. 나아가 김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분명하게 느낀 것은 그는 분명히 대다수 소설가들하고는 달랐다는 것이다. 뭐랄까. 까만 안경테 넘어 친근한 인상에서 풍기는 삼촌 같은 이미지, 반면 친근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카리스마…. 이런 것들이 강렬하고도 털털한 김 작가의 인상을 대변해준다.

인간의 믿음이란 정보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의사는 돈이 많을 것이라는 이미지, 변호사는 말을 잘 할 것이라는 이미지, 소설가는 담배를 많이 피울 것이라는 이미지, 해커는 지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 인간은 그런 이미지를 자신의 머릿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이 모여 정보가 된다. 나는 그런 잘못들을 정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그 이미지를 이용할 뿐이다.

김 작가가 펴낸 첫 소설집이자 2006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었던 『펭귄뉴스』중 「멍청한 유비쿼터스」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사람이나 대상을 판단할 때 흔히 그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은 꾸며지기보다 배어나오게 된다.

사실 올해로 등단한 지 6년째인 작가의 첫 작품이 동인문학상의 후보가 됐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 상에 대해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저 좋게 봐주셨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죠”라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김 작가처럼 그의 소설 역시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김 작가의 소설은 그저 작가가 지금까지 본 사물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놓은 ‘준비운동’일 뿐이다.

단,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우리 눈 앞에 언제나 흔하게 있지만 너무도 사소하여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사물들에 대한 관심과, 낡고 소용가치가 떨어져 사람들에게 잊혀진 옛 시대의 유물들에 대한 애착이 그의 소설 속에 녹아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제가 6년 동안 경험한 흔적이자 상상력의 기록이예요”라며 “여느 소설처럼 소설을 위한 경험들만 주욱 나열해 놓는다면 소설이란 장치가 너무 심각해지지 않을까요?”라고 오히려 반문하는 김 작가에게서 ‘문학’이란 그 자체를 위한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나만의 틀이 확실한 꿈꾸는 작가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이란 단어가 필요 없어. 훌륭한 고래가 없듯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륭한 선인장이 없듯 훌륭한 인간도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

김 작가의 소설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작중 인물로 등장하는 ‘삼촌’의 대사는 작가 김중혁의 삶의 가치관과 그의 소설 쓰기 방향을 짐작케 한다. 즉, 남들의 시각 대신 자기만의 시각을 가진 틀을 만들어내고 그 틀을 더욱 더 정교하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작가의 이러한 글쓰기 철학은 어디서 영향을 받게 된 것일까.

계명대학교에 재학중이던 시절,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여느 대학생들과 같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책 읽는 것, 음악 감상을 즐겨하는 그였지만 항상 그의 마음 속 저편에서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나도 모르게 어느 날 작가가 되어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대학교 때 뵙게 된 교수님의 영향이 참 많이 컸어요. 복학 후 제 대학시절의 공강 시간은 거의 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보낼 정도였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그의 수줍은 표정에서 자신이 꿈꾸는 작가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물의 해방을 통해 인간의 해방을 꿈꾸다

사실 김 작가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팝음악 칼럼니스트이자, 매주 한겨레 신문에 음식 탐방기사를 쓰는 ‘달콤한 끼니’ 소개자이기도 하고, 소설집 표지도 직접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이면서 그리고 6년째 자신의 홈페이지 ‘펭귄뉴스’를 운영하고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활동 영역이 넓은 만큼 김 작가는 주의가 산만한 ‘우왕자왕 예술갗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그만큼 수 많은 경험을 쌓고 그 안에서 그만의 감각을 확장했기에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추억의 산물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마운 소설가가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상상력이 작동하는 유일무이한 김중혁식 소설 세계일 것이다.

문학평론가인 김형중씨는 김중혁 작가를 이렇게 평가한다. “아마도 이것이 사물의 해방일 것이다. 이는 곧 김중혁이  자신이 수집한 사물들에 대해 바치는 경의이자, 그것들에 시도하는 대화이다. 그 덕분에, 사물들은 아우라(Aura)를 부여 받는다”고 말이다.

김 작가가 『펭귄뉴스』라는 소설에서 대화를 시도했던 자전거, 라디오, 타자기, 지도. 언뜻 보기에 그들은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그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들은 책을 읽는 독자의 기억을 비트로 바꿔 저 어딘가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릴 것이다. 마치 펭귄의 그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언밸런스한 ‘비트’처럼 말이다.

/글 김은지 기자 eunji85@
/사진 유재동 기자 wood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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