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 혹시 ‘관음증’ 들어보셨어요? 대개 ‘엿보기 심리’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활을 엿보는 일은 일상의 일부가 됐습니다. 「연세춘추」에서는 엿보기 심리와 관련된 매체, 역사적 배경 그리고 당신의 엿보기 심리 지수까지 점검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 기사를 엿볼 준비가 되셨나요?

결혼식을 치른 신랑신부가 합방하는 첫날밤이다. 방문 앞에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사람들로 즐비하다. 그들은 손가락에 침을 묻히더니 문에 살며시 갖다 댄다. 창호지로 발랐기에 구멍이 송송 부드럽게 뚫린다. 그야말로 ‘엿보는’ 중이다. 멀리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달려와 ‘훠이’하고 내쫓는다. 바로 구식의 우리의 구식 혼례에서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이다.

이처럼 관음증은 모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심리다. 단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형태를 띤다. 사전에서 ‘관음증’을 찾아보면 다른 사람을 몰래 반복적으로 보면서 성적인 만족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이 의미는 퇴색돼 단순히 ‘엿보기 심리’로 통용되고 있다. 인간 본연의 심리이기에 엿보기가 가지는 효력은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광고에서 방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이를 다룬 콘텐츠에 주목해보자.

▲ 인간의 엿보기 심리가 드러난 다양한 매체에 주목해보자.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광고로 자극하다

소비자들의 엿보기 심리를 끄집어낸 발칙한 지면 광고가 있다. 호주출신 슈퍼모델 앨 맥퍼슨이 설립한 ‘앨 맥퍼슨 인티메이츠’의 란제리 광고가 그렇다. 앨 맥퍼슨이 직접 모델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한 이 광고의 설정은 ‘일상의 훔쳐보기’. 주방과 침실 곳곳에서 그는 란제리 차림으로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누군가 커튼·문·창문 틈 사이로 몰래 훔쳐보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의 일에 열중이다. 하지만 모델의 얼굴만은 드러내지 않고 교묘하게 감춰 독자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이 광고는 호주의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들의 연합회인 ‘AWARD’에서 주는 광고상 14개 부문을 휩쓸면서 광고업계에 큰 반향을 가져왔다. 안영갑 교수(정경대·마케팅)는 “남을 훔쳐보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을 광고에 접목시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란제리 광고에서 온갖 포즈를 취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리얼리티에 활용하다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돼 시즌 13까지 제작되고 있는 대표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벌』도 엿보기 심리를 철저히 활용한 사례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사람들은 일정기간 동안 외딴 곳에서 생존을 위한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면서 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 어떤 참가자는 심지어 상어까지 잡는 기염을 토해냈다고 한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이렇게 매주 1시간 분량으로 방영되는 적나라한 생활상과 승부를 통해 참가자들이 살아남는 모습에 열광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기본적인 엿보기 심리를 이끌어내 높은 시청률을 담보한다. 그래서 기업들을 앞다퉈 간접 광고의 형태로 후원에 참여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물이 부족해 힘겨워하는 참가자들이 ‘마운틴듀’를 상품으로 놓고 경쟁하는 형식이다. 또한 매주 가장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참가자에게는 ‘타이레놀’ 상이 주어졌다. 박주연 교수(사회대·디지털커뮤니케이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 누군가를 엿보는 부정적인 심리뿐만 아니라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자신을 반추해보는 긍정적인 측면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한다.

▲ 두근 두근, 알쏭달쏭… 관음증의 그 미묘함. /윤영필 기자 holinnam@yonsei.ac.kr

몰래카메라로 보여주다

 지난 1990년대 초반 MBC 『일요일 일요일밤옐를 통해 방영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엿보기 심리 자체를 소재로 다룬 코너다. 당시 활동하던 연예인이나 사회명사들은 몰래카메라에 한번쯤 속아본 적이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높은 시청률만큼이나 기발한 상황설정은 이 코너를 장수하게끔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시청자들은 돌발적인 상황에서 유명인들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카메라 저편에서 바라보며 흥미진진해 했다. 정의석씨(정경경영·05)는 “무엇보다도 연예인들의 진솔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신선했다”며 몰래카메라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몰래카메라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몰래카메라」라는 코너로 새롭게 부활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예전만 못하다. 비슷한 형식의 엿보기 심리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이름만 다를 뿐 계속해서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의 엿보기 심리를 통해 뭔가에 주목하게 만드는 데는 종종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이 따르기 일쑤다. 기업이 소비자들을 성적으로 자극해야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해서다. 이는 모바일 화보로 일컬어지는 연예인들의 화보집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지난 2003년부터 촉발된 성 상품화는 여러 연예인들이 거쳐 갔으며 현재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엿보기 심리의 상업적인 이용에 대해 심종명씨(기계공학·04)는 “광고주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서 안교수는 “소비자들의 정신건강에 해로움을 가져다주는 단순한 효과만을 찾기 마련”이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이색적인 아이디어가 될 수도, 과도한 섹스어필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박교수는 “제작자들이 엿보기 심리만을 자극한 일회성 콘텐츠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한다. 엿보기 심리를 통한 자극의 홍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해 보는 것을 어떨까.   

/정석호 기자 choco02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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