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꼴부터 출판까지, 한글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

“귀엽고 정감 있어 보이잖아요.”
최유신씨(아동가족·03)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넣고 싶은 폰트 아이템을 하나 둘 클릭하면서 “평범한 글씨로 덮힌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금세 싫증이 날 때가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실제 그녀의 말처럼 최근 ‘웹 폰트(web font)’라 불리는 인터넷 글꼴들은 현대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싸이월드에서는 매일 평균 2만 5천여개의 글꼴들이 팔린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웹 폰트의 성장은, 한글이 더 이상 글자가 아닌 하나의 문화 컨텐츠이자 디자인으로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동안 흔히 웹 폰트는 인터넷 공간에서만 사용되는 글꼴들로만 생각됐었다. 하지만 이러한 웹 폰트들은 온라인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 상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글 글꼴을 연구하고 있는 윤디자인연구소(아래 윤 폰트) 디자이너 김주홍씨(33)는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웹 폰트가 현재 블로그 및 미니홈피 뿐만 아니라 영화 포스터, 책 표지, 심지어 주민등록증에도 사용되고 있다”며 현실 속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터넷 글꼴들의 현실을 전했다.
그렇다면 생활 속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이러한 글꼴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글꼴 제작의 과정은 몇 가지 과정으로 나눠진다. 제일 먼저 독자의 가독성을 기본모토로 한 기획이 있은 뒤, 이를 두고 글꼴 디자이너들 간에 자체 아이디어 회의가 있다. 그 후 면밀한 시장조사와 분석이 있은 뒤, 본격적인 글꼴 제작이 시작된다. 김 디자이너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샘플 문장으로 20자, 나아가 2백자의 글꼴들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디자인으로서의 웹 폰트가 더 큰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이에 대해 김 디자이너는 “글꼴들을 연구하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된 전단지나 간판 등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이용하려는 사용자의 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창의성과 호기심을 그 첫째로 뽑았다.

 한글이 출판 디자인을 만났을 때

한편, 20세기 들어 전자출판 시장의 활성화로 최근 출판 디자이너가 새로운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한글 글꼴 디자인이 활성화된 최근, 한글의 참 멋을 살리는 출판디자인의 측면에서 출판 디자이너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출판디자인에 있어, 정말 아름답고 실용적인 한글 디자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지적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계원조형예술대학 출판디자인과 이기성 교수는 “단순한 자소의 조합만으로 단어가 이루어지는 알파벳 글자꼴과는 달리 자소가 모여서 음절을 만들고 다시 음절이 모여서 단어가 되는 한글 글자꼴은 제작 방법이 명확히 달라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이러한 한글 글꼴 디자인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국내 출판 디자인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에 덧붙여 이 교수는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과 탁상출판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면서 조판소와 제판소의 역할이 출판업계로 넘어오고 있는 오늘날, 출판 디자이너는 종이책 편집은 물론 멀티미디어를 사용하는 디스크 책과 화면책을 편집할 능력을 갖춰 그래픽 디자이너와는 구별되는 ‘지적 디자이너’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글 디자인에 있어 출판 디자이너의 역할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한글 디자인의 새로운 발견, 글꼴 공모전

지난 9월 29일 세종대왕기념관에서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위업과 정신을 계승하고, 한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의도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14회 한글 글꼴 공모전’의 시상식이 있었다. 이는 국어정보화 중장기적인 발전 및 한글 디자인 연구를 위해, ‘한글 글꼴 개발원’이 주관하여 다양한 한글 글꼴 개발을 도모하는 행사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평가받은 캘리디자이너(Callydesigner,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있는 글자체를 구사하는 디자이너)이자 서예가인 김용환씨(43)가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김 디자이너의 작품은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바탕으로 고전에 근거한 서체를 현대화하여 가독성과 예술성, 그리고 의미전달에 주력하여 제작됐다. 그는 “컴퓨터를 이용한 디자인이 아닌 육필로도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전통적인 서예술과 함께 실생활에 응용될 수 있는 캘리디자인을 꾸준히 모색해야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공모전은 서구식 디자인이 난무하는 국내디자인 환경 속에서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매체로서의 한글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백9돌과 한글이 반포된 지 5백60돌이 되는 해로서, 오는 9일은 국경일로 재 지정된 한글날이다.
한글 제정과 관련한 여러 사실을 알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됐고, 한글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문화 유산에도 등록된 만큼 이미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예쁜 서체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최근의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글 글꼴 디자인도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문화컨텐츠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한글 글꼴 디자인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우리가 웹이나 논문 등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명조체는 일본의 유명한 글꼴 제작사인 모리자와사(社)에 의해 개발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와 표정을 담아낸 글꼴의 개발이 절실히 필요하다”라는 이 교수의 말처럼 이제는 온 국민이 한글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새로운 발전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만의 글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 김은지 기자 eunji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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