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서리
 연세대 밤의 권력인 연세대정보공유(아래 연정공), 이화여대 언니들의 ‘발칙한’ 놀이터 이화이언. 그 외에도 서울대의 스누라이프, 고려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아래 고대자게) 등, 각 대학에는 대학생들이 ‘잘 노는’ 커뮤니티가 있다. 이들은 우선 회원 수, 게시물 수에서 다른 게시판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또한 막강한 여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속성을 지닌다. 이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물의 주제는 정치, 경제, 생활, 군대 등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가끔씩 그 게시판의 성격을 알려주는 화젯거리들이 하나씩 터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 비난중입니다.

 특히 연정공의 성격은 ‘익명의 가면 안에 숨은 키보드 전사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출발한 연정공의 모습이 익명게시판(아래 익게)을 통해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다. 익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은 빈번한 ‘원주캠퍼스 비난’이다. 해묵은 ‘원세대’, ‘분교’논쟁은 이제 연정공 안에서는 폭력으로 모습을 바꿨다. 연정공의 ‘흉아’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원주캠 학생들을 비난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수능점수로 비교하기, 양 캠 동일학과생에 대한 비하 등이 그 예다.
 고려대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고려대 조은경씨(국문·03)는 “오히려 안암캠 내부에서 갈등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전한다. 인문·사회캠퍼스와 자연·과학캠퍼스가 같은 안암캠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거리가 먼 까닭에, 학생들이 그 두 캠퍼스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고 서로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조씨는 “인문·사회대생들은 인문·사회캠퍼스만을 본교, 안암캠퍼스라고 칭하고, 자연과학캠퍼스를 애기능캠퍼스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아마도 애기능이라는 단어에는 자연과학캠퍼스가 위치상 약간 다른 것에 대한 위화감의 의미가 내재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사냥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물론 각 게시판들은 오프라인 상에서 이뤄지기 힘든 여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총학생회나 학교 본부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게시판에서 전근대적인 멍석말이가 재현된다는 점이다.
 지난 2005년 서울대에서는 이른바 ‘철사마사건’으로 한동안 떠들썩했었다. 서울대 중도에서 시끄럽게 굴던 한 남자와 그의 여자 친구를 제지하던 사람이 그 남자에게 폭행당한 사건이다. 그것을 놓고 서울대생들은 그를 스누라이프 및 각 게시판에서 ‘철사마’라고 부르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비록 근본적인 문제점은 철사마에게 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철사마에 대해 강한 욕설과 언어폭행이 쏟아졌고, 그의 여자친구를 ‘오크히메’라고 부르는 둥 사태는 이상한 국면으로 치달았다.
 또 다른 사례가 근래의 연정공에서의 기수단(아래 BK)에 대한 비방이다.  예컨대 “BK애들은 자기네들끼리 설친다”, “연세대학교라는 것 엄청 자랑하고 다닌다”등의 주관적인 비난이 많았다. 특히 “응원단 밑 닦아주는 것들”이라는, 전혀 근거 없는 조롱이 BK에게 날아가기도 했다. 

여자들, 스타벅스에서만 대화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성이 악용되다보니, 게시판은 대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곳이 많다. 그러나 자신들만의 솔직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휴식처도 있다. 바로 이화이언의 ‘비밀의 화원’이다.
 이화여대 이윤경씨(생명과학·05)는 비밀의 화원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자 웃으며 “남자에게 그런 걸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비밀의 화원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부분 자유롭고 솔직한 성(性)담론이기 때문이다.   이성교제문제, 여자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담…. 이대생들은 이화이언이라는 소통의 장을 통해 더욱 솔직해지고 있다. 또한 프리챌커뮤니티인 ‘연세레이디’도 비슷하다. 연정공의 폭력성에 대한 반발로, 연세레이디는 여성들만의 자유롭고 소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게시판은 이용자가 만드는 것이다. 게시판의 관리자는 판을 제공해줄 뿐, 결국 게시판의 본질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이용자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게시판의 모습은 각 대학교마다, 크게는 게시판 하나하나 마다 달라지며 실제 그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면, 게시판은 이용자가 만드는 것이다. 게시판의 이용자가 자기 게시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종래엔 망가지고 만다. 근래 연정공의 마스터 김성무씨(정보산업공학·96)가 연정공 회원들에게 ‘폐쇄조치를 하겠다’는 공지를 올린 것은 바로 게시판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가 글을 쓰는 게시판을 깨끗하게 지켜야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니고 이용자다. 일시적인 감정의 배출이나 소위 ‘낚시글’로 짜릿한 쾌감을 누리는 것은 잠시뿐이다. 그 배출구가 사라지면 어디다가 속을 풀어낼 것인가. 다른 게시판을 하나 더 만들면 된다고? 그저 악순환이지 않을까.

/양해준 기자 yangyangha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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