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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드라마 '재창작'인가, '복제품'인가
  • 정석호 기자
  • 승인 2006.05.22 00: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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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에 발매된 ‘MC The Max’의 「추억 속의 재회」, ‘SG워너비’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홍경민’의 「이 밤을 다시 한 번」. 이 세 곡의 공통점은 모두가 누군가의 곡을 리메이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06년, 이제는 리메이크의 중심이 ‘드라마’ 장르로 이동해 많은 이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이러한 시도가 처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분야에서 리메이크 열풍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까.

지난 1978년, 『청춘의 덫』이 조기종영됐었다. 7080세대의 톱스타 이정길과 이효춘 주연의 드라마 『청춘의 덫』. 드라마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대한 버림받은 여성의 복수로 당시 시청자들을 ‘안방극장의 덫’으로 유인했다. 그러나 주인공을 미혼모로 설정한 것에 대한 당시의 선정성 논란으로 20회를 기점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1999년, 이 드라마는 외압에 의한 조기종영의 아픔에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 때문인지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이종원과 심은하를 앞세워 돌아온 드라마 『청춘의 덫』은 평균 40%대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수립했다. 또한 동우(이종원)에 대한 은희(심은하)의 집착과 애증이 서려 있는 ‘당신, 부숴버릴거야’라는 대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렇듯 1999년 작(作) 『청춘의 덫』은 한마디로 말해 ‘성공적인 리메이크 드라마’였다.

▲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은 드라마 리메이크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이처럼 리메이크된 드라마는 무엇보다도 추억과 향수의 매개로써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7080세대의 대작 드라마를 보며 수십년의 세월을 초월해 감정을 공유한다. 이렇게 리메이크가 활발히 이뤄지는 측면에 대해 박주연 교수(사회대·디지털커뮤니케이션)는 “그 시대의 원작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으며,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한 대작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에 높은 시청률로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에 각 방송사에서 검증된 성적을 토대로 리메이크하려는 경향 또한 두드러진다. 이것은 바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과거의 시간 속에서 명작을 찾아보려는 방송사의 자구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방송사의 리메이크 시도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1987년 방송돼 7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사랑과 야망』은 지난 2월 4일 첫 방영을 시작으로 시청자들을 다시 안방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당시 9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던 이 드라마는 리메이크되면서 50회로 축소될 예정이었으나 최근에는 60회 혹은 70회로의 연장방송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원작이 드라마는 아니지만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외동딸 사이의 갈등과 애정을 그린 소설 『눈꽃』도 오는 10월에 드라마로 리메이크돼 방영된다. 또한 지난 1988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인 ‘불륜’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여 사회적으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모래성』도 오는 2007년에 리메이크 될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리메이크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김수현’이라는 단 한명의 스타작가에 의해 쓰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타시스템, ‘시장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검증받은 스타작가가 신진작가보다 시청률을 1%라도 더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드라마 소재의 고갈과 함께 한 작가에 의해 이야기가 천편일률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신다혜양(상경계열·06)은 드라마 리메이크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보다는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재탕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가을동화』부터 『봄의 왈츠』까지 연이어 한명의 스타PD에 의한 제작은 비슷한 이야기와 극의 전개로 긴장감을 낮췄으며, 시청률은 갈수록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는 한류 스타를 내세운 수출용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40%대의 높은 시청률을 보였던 『청춘의 덫』과는 달리 10%대의 미미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이 점에 관해 박교수는 “이렇게 새로이 만들어진 드라마는 현재의 시대상도 함께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며 “그 이야기가 통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각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춘의 덫』이 등장인물과 이야기 구조가 이전 작(作)과 같았지만 상당한 인기를 누리게 된 이유는 그것이 지난 1999년의 시대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사랑과 야망』과 같이 80년대 세트장을 똑같이 지어 놓고 연기자에게 그 때의 배역을 주입시키려는 드라마에 과연 시청자가 옛날보다 더한 감흥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은 새롭게 만든 리메이크 작품이라기보다 단순히 ‘복사’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지금의 시대상에 맞춰 독창적인 이야기로 구성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나았을지도 모른다.

봇물 터지듯 잇따라 나오는 리메이크 열풍. 이제는 하나의 문화적 추세로서 자리잡아 나가고 있다. 단지 유명 배우만을 앞세워 흥행을 보장받으려는 세태에서 벗어나 시청자들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측면은 매우 고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소외받을 수 있는 신진작가들을 위해 단막극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드라마 관련 업계 종사자는 “단막극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들을 기용하는 하나의 통로로써 기능하지만 그것의 질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원하는 시대의 욕구를 읽지 못한다면 리메이크된 드라마는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그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석호 기자  choco02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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