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延世)’라는 이름의 기원을 아는가? 우리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연’과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세’, 이러한 동서 만남의 정신을 통해 우리는 ‘동서(東西) 고근(古近) 사상의 화충(和衷)’이라는 우리대학교 초기 교육방침을 엿볼 수 있다.

그로부터 1백20여년이 지난 오늘날, 동아시아 속 한국학 체계의 수립을 위해 새로운 논리와 연구를 불태우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국학연구원’이 그곳이다. 위당관 3층, 이미 한국학 열기의 한 축을 담당한 그곳은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정신을 담은 연구물들로 가득 차있었다. 국학연구원 부원장 이광호 교수(문과대ㆍ한국유학)는 “국학연구원의 모체는 1948년 용재 백낙준 선생에 의해 설립된 동방학연구소이며, 이를 확대 개편해 지난 1977년 설립된 기관이 바로 국학연구원”이라고 국학연구원이 걸어온 길을 설명했다. 그러던 중 연세 국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지난 2001년 국학연구단이 결성되면서부터였다. 더불어 특성화사업의 일환으로 국학분야를 집중 육성함과 동시에 연구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국제적인 학술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국학연구원은 백낙준 선생의 ‘국학담화’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3백79회 동안 국학의 중심이 되는 문제들로 국학발표회를 개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방연구의 집록이라고도 불리는『동방학지』는 총 1백32집이 발행돼 국내에서 가장 우수하고 역사가 오래된 학술지로서의 신뢰와 명성을 쌓고 있다. 이밖에도 국학연구원은 대학원에 한국학 협동과정을 개설해 한국학 관련 전문학자를 양성하는 동시에, 용재학술상과 용재 석좌교수 강좌 개최, 무악서당 및 국학도서관을 운영하는 등 한국학 전반에 걸쳐 왕성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국학연구원의 연구 사업이 늘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광호 교수는 “지난 2005년 8월 말 국학연구단이 해체된 후로 국학연구원은 심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며 “확대된 규모에 비해 예산이 2000년 이전으로 돌아간 상황”이라고 국학연구원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덧붙여 이 교수는 “국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연구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교 전체 운영과의 연계를 통해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인문학의 위기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반 세기 이상 꾸준히 국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국학연구원. 국학연구원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물론, 국학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도록 시대가 요구하는 신(新)국학의 연구를 향해 뻗어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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