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신촌의 모 PC방. 모니터에서는 스타크래프트(아래 스타), 카트라이더 등 다양한 게임화면이 흐르고 있다. ‘앗! 저 가냘픈 손은 남성의 손이 아니잖아’. 정신없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여성도 꽤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PC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스타, 스페셜포스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긴다는 장한나씨(24)는 주위의 시선에 대해 “남성들과 다르게 보지 않아요. 오히려 멋있다고까지 하는 걸요”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카트라이더, 스페셜포스에 프리스타일까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은 남녀 모두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다. 실제로 온게임넷과 MBC게임에서 주최했던 프리스타일, 스페셜포스 등의 게임리그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출전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한 게임계에선 많은 여성 전문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게임과 여성 서로를 점점 가깝게 하고 있는데. 게임계의 전문 여성들이 말하는 게임과 여성,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여성프로게이머, 별을 쏘다

현재 ‘한국e-sports협회’에서 프로인증을 받고 활동하는 여성프로게이머는 이종미, 김영미, 서지수 이렇게 단 세 선수 뿐이다. 이 중 서 선수는 지난 8월 16일 World Cyber Games 예선에서 ‘폭풍저그’라 불리는 홍진호 선수를 2:0으로 무난히 제압하면서 화려하게 재기를 선언했다.
“스타를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던 임요환 선수처럼 나도 여성들에게 스타를 각인시키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서 선수.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통해 스타를 처음 접했던 서 선수는 “여성이 스타를 접할 기회가 적을 것일 뿐 실력은 남자선수에게 뒤질 것이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게임은 이제 특정 성이 독점하는 영역이 아니고 남녀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가 돼가고 있다”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여풍이라뇨? 과거와 다를 게 없는데

“여성 프로게임단 감독이 아닌 프로게이머 출신 감독이라고 불러주세요”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프로게이머 생활을 거친 후 현재‘삼성전자 프로게임단 칸’(아래 삼성칸)을 이끌고 있는 김가을 감독의 말이다. 삼성칸에 속해있는 스타, 워크래프트, 피파팀을 총괄하고 또한 대외홍보까지 맡고 있는 그녀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혼미해 질 때도 있지만 나의 직업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며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여풍’이라는 단어에 반박하며 “예전부터 포트리스, 크레이지 아케이드 외에도 창세기전, 스타를 즐기는 여성들이 많았다”며 “내가 ‘캐쥬얼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게임’을 싫어하는 것처럼 성을 구분해서 특정 성이 특정 성격의 게임을 즐긴다고 분석하기보단 개개인의 성향차라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모바일게임의 선구자 또한 여성

국내 최초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냈고 세계 40여 개국에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전문기업 컴투스. 현재의 컴투스를 만들어낸 박지영 대표이사는 놀랍게도(?) 여성이다. 하지만 모바일게임을 즐기는 여성이 전체이용자의 40%에 육박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박 이사가 모바일게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는 휴대폰만으로 게임이 가능하다는 인식조차 없었을 정도로 모바일게임이 생소했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해서 지금과 같은 신화를 일궈낸 박 이사. 그녀는 “회사에서 남자직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 외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충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남녀차별에 대한 피해의식에만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을 꺼내며 “사회에 갓 진출한 초년생으로서 겪게 되는 일반적 난관을 여성이기에 당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남자동료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괴롭게 된다”고 충고했다.

서지수씨, 김가을씨, 박지영씨 모두 자신을 여성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들이 게임계에 종사함에 있어서 여성이라는 사실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일을 감당해 나가는 여성 전문인들이 많아짐과 동시에 “아직 남성이 많긴 하지만 게임을 즐기러 오는 여성이 놀랄만큼 늘어났다”고 말하는 PC방 운영자 임진상씨(42)의 말처럼 게임을 즐기는 여성들 또한 많아지면서 게임계에서 여성의 위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이제 ‘게임하는 여성’이라는 표현이 특별하게 쓰일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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