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현 천문대 연구원
늘 그래왔지만, 한 학생의 말처럼 전투 같은 수강 신청 변경 기간이 지나갔다. 더 좋은 수업을 찾아 옮겨 다니는 것은 학생들이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입맛에 좀 더 잘 맞고 시대적 요청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수업을 개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색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교육 혁신’과 ‘1학년 교육 강화’ 같은 화두가 온통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조바심이 난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학 분야 교양 교육 개선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현장에서 느꼈던 점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과학 교양 교육에는 원죄 같은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쏟아지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성과에 노출되어 있고 익숙해져 있다. 과학 교양 수업에서도 당연히 이러한 최신의 과학 업적이 소개되고 학습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편 학생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능력은 많은 경우 실망스러운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스노우가 ‘두 문화’에서 ‘당신은 읽을 줄 아는가?’라는 아주 기초적인 문과적 질문과 동등한 과학적 질문이라고 한 ‘가속도 혹은 질량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학 과목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들조차도 이러한 기초적인 과학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만큼 중고등학교에서의 과학 교육이 겉돌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진부한 논의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 교양 수업에서 최첨단, 최신의 과학기술의 성과를 가르친다고 한들 과학을 읽는 기초적인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현대 과학의 성과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에서의 과학 교양 교육은 과학에의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가장 고난도의 과학적 이해를 요구하는 최첨단, 최신의 과학기술 이야기를 가르쳐야한다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능력은 없으면서 과학 교양 수업에 대한 기대는 높다 보니 쉽게 흥미를 잃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육지책으로 우선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과학 교양 교육의 단계를 둘로 나누면 어떨까?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야말로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이미 완성되었어야할 기초적인 것들을 교육하는 과학 교양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의 과학 교양 수업은 모든 것을 교과서적으로 가르쳐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인문사회과학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실험과 실습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과학적인 방법론과 과학적인 사고를 기르는 것에 교육의 목표를 두어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학생들이 몸으로 과학의 기초적인 개념을 체득하고 이를 자신의 교양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데 과학 교양 교육의 첫 단계의 초점을 맞춰야할 것이다. 이러한 체험 위주의 과학 교양 수업 과정에 현재 우리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명저읽기’나 ‘독서와 토론’ 과목을 접목시켜서, 수업 내용과 관련된 과학책 읽기를 정규 수업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도 과학적 사고의 틀을 형성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기초적인 과학 교양 교육의 다음 단계로 좀 더 심화되고 개별화된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언급한 첫 번째 단계의 과학 교양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심화학습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천문우주학을 예로 들면 ‘블랙홀’, ‘시간 여행’, ‘우주생명’ 같은 아주 구체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수업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과학적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과감하게 필요한 수학적 기술을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첫 단계 교육을 통해서 과학적 사고가 체득화된 학생들에게 좀 더 도전적인 수업을 제공할 의무가 있기도 하다. 이 단계에서는 첫 단계의 과학책 읽기처럼 과학 글쓰기를 수업 과정에 포함시켜서 과학 교양 수업에서 학습한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발표할 수 있는 과학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우리가 지향해야할 교육 방향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이명현 천문대 연구원

  물론 이러한 생각은 앞으로 교육학적으로 철저히 검증 받아야할 문제 제기에 불과하겠지만, 과학 교양 교육 현장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학 교양 교육 혁신을 위한 작은 제안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