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은 뒤를 돌아볼 수 있을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새학기가 시작됐다. 한장한장 달력이 찢겨지고 하루하루 날짜가 바뀌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일상일 뿐인데, 단지 개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무언가 특별하고 의미있는 것 같다. 20살이라는 영광의 끈을 달고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나 새해 자정날 밤에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만큼은 아니지만은, 파일 하나 정도는 옆구리에 낀채 캠퍼스를 누리면서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역시나 대학생의 ‘시작’은 마냥 설레기만 하다.

▲방학 동안에도 계속돼왔던 나에 대한 성찰은 새학기를 맞이하면서도 변함이 없다. 사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기 마련이지만, 지금 나는 시작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혹,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으로 새학기를 맞이하는 마음이 불편할 것은 두렵지 않다. 뒤를 돌아보는 일, 여유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기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녀석을 너무 과대평가 했던 것 같다. 그건 조건 있는 여유가 아니라 내 삶에 있어서 그저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추는 일일 뿐이니까.

▲「연세춘추」가 창간 70주년을 맞이했다. 편집국의 내 자리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기만 하면 캐비넷 위 「연세춘추」 축쇄판들이 보인다. 거기에서는 그동안 연세춘추를 거쳐간 기자들의 땀냄새가 나는 듯도 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갓 찍어내 번져버린 잉크자국도 있을 듯 하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역사 속의 역사를 느끼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

▲과거를 지내왔기에 지금이 존재하리라. 현재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은 항상 반복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하다. 오늘만큼은 더욱더 신중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지나간 어제를 돌아보는 예의를 갖추고 싶다.

▲몇 년째 이어지는 대학언론의 위기는 아직까지도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는 듯 하다. ‘언론사가 망해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학보사 기자인 나로서도 상당히 유감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기에 참으로 씁쓸하다. 학생들이 언론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언론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언론 활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없다는 것. 이런 이유들로 인해 벌써 대학생활의 반 이상을 신문사에 몸 담고 있는 내게는 이제 대학언론의 위기라는 말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너무나 간단해져버렸다. 지난 70년 동안 「연세춘추」는 어떤 모습을 해왔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걸어왔으며 대학언론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이거다, 저거다, 수학공식처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나는 반지하 편집국 속에서 기자들이 취재 수첩을 들고 정신없이 왔다갔다하고 연신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과거를 돌아본다.

▲나를 돌아보는 일은 고개만 돌린다고 해서, 혹은 잠시 멍한 상태로 있는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나은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 예의를 갖춰 진심의 마음으로 그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을 때에서야 가능하다. 개강을 맞은 우리, 그리고 창간 70주년을 맞은 「연세춘추」. 모두가 마찬가지다. 잠깐이라도 좋다. 걸어온 길이 있다면, 뒤를 돌아봐라. 당신의 뒤에 있는 더 넓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연세춘추」 역시 지난 70년을 되돌아볼줄 아는 정직함과 겸손함을 갖추고 연세대학교의 공기로서 그 빛을 다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뒤를 돌아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