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동수첩- 2005 섹슈얼리티 영화제 이모저모

영화제는 끝났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총여학생회(아래 총여) 정책국장 장희수양(사학·03)의 말처럼 총여가 주최한 ‘2005 섹슈얼리티 영화제(아래 섹슈얼리티 영화제)’는 여성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지난 27일 막을 내렸다. 지난 23일 중앙도서관 앞에서 힘차게 개막한 지 꼭 5일만이다.

개막식은 ‘여성의 섹슈얼리티, 그 촘촘한 억압과 모호한 해방에 관하여’라는 섹슈얼리티 영화제의 주제에 걸맞게 진행됐다. 총여와 이번 영화제의 자원활동단은 직접 회색종이에 모노톤으로 성적으로 약자인 여성이었기에 겪어야만 했던 억압을 형상화했고, 맨발에 물감이 묻힌 채 그림 위를 뛰어다니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물감의 형상화는 촘촘한 억압을, 그림 위를 뛰어다니는 행위는 그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총여 부회장 표박미라양(교육·02)은 설명했다.

섹슈얼리티 영화제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아래 소년)’, ‘파니 핑크’, ‘바비인형의 제국(아래 바비인형)’, ‘아름다운 육체’, ‘팻 걸’ 등 모두 5편의 영화를 지난 23일부터 나흘동안 상영했다. 각 영화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줬다. ‘소년’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정체성을 추구했던 실존 인물 브랜든 티나의 이야기를 그려,‘바비인형’은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사회에서 바라는 여성상을 상징하는 바비인형을 유쾌하게 분석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는 역시 ‘팻 걸’이었다. 이 영화는 충격적 결말과 논쟁적 내용 등으로 인해 지난 26일 밤 9시부터 진행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냈다. ‘팻 걸’은 매력적인 언니 엘레나와 뚱뚱하고 못생긴 동생 아나이스가 각기 다르게 섹스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엘레나가 잘생긴 청년 페르난도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원치않는 방식으로 섹스를 하는 것에 반해 아나이스는 강간이라는 폭력적 방식에 의해 희생당한다. 토론 내내 가장 논점이 됐던 부분은 바로 왜 아나이스가 강간을 당하고도 ‘나는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각종 해석이 분분해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의 욕구를 무시한 채 남성의 의사대로만 진행되는 섹스는 상호간의 합의가 선행되더라도 강간과 다를 바 없다”는 한 참가자의 발언은 ‘아나이스가 엘레나와 자신이 경험한 섹스의 방식이 결국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부르짖기 위해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이 아닌갗 하는 것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줬다.

이번 영화제의 대미는 지난 27일 저녁 7시부터 학생회관 3층 푸른샘에서 진행된 폐막콘서트 ‘괜찮아, 잘 될거야’가 장식했다. 폐막콘서트는 총여 회장 양최현경양(사회·00)이 몸담고 있는 대학연합합창단 ‘쌍투스코러스’의 열정적인 무대에 의해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또한 참가자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당해야했던 억압 등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양최양이 “밤을 새 피곤하더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새벽부터 미용실에서 몸단장을 하고 나오는 친구들이 안스러웠다”고 말하자 이화여대 강은하양(방송영상·02) 또한 “귀가시간이 늦으면 여성이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심지어 친구들까지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싫었다”고 털어놓아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폐막콘서트가 끝난 후 표박양은 “남녀차별은 수천년 동안에 걸친 문제여서 그 폭력의 일상성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며 “성별권력관계에 대해 성찰하지 않으면 남성들은 이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표박양의 말은 여성들이 왜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억압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말의 해답을 부여했다.

섹슈얼리티 영화제는 회당 30명이 채 되지 않는 저조한 참여율 등으로 인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총여의 기치에 아직은 많은 학생들이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가 의미있는 메아리를 남긴 것만은 틀림없으며 참여자 중에는 남성의 비율도 높아 고무적이었다. 표박양은 “앞으로도 총여학생회는 각종 워크샵, 여성제 등의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혀 여성주의를 위한 총여의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러한 노력에 더이상 ‘여성주의’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지 않을 때 제2의 아나이스나 엘레나의 모습은 비로소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영화제가 끝나고 문득 뇌리에 스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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