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틀에 가둬 놓고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 4일 통과된 국적법 개정안이 24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부모가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이중국적자는 병역 의무를 마칠 때까지 우리 국적을 포기할 수 없게 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평소 1일 평균 2~3명의 국적포기자가 있었으나 이 20일 사이에는 1천8백20명의 국적포기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상당 수 상사 주재원, 교수를 비롯해 고위직 관련 자녀들이 포함됐고, 대다수가 군미필 남성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국적포기가 병역기피를 위해서였다는 분석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그 심정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국회의원이나 언론에서 모든 국적포기자들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하는 최근의 행태는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부모 손에 이끌려 아무 것도 모른채 국적을 포기하는 어린 아이들의 국내대학 입학 권리를 아예 박탈하고, 국적포기자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니.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사회의 범법 문제로 여기고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우리가 성숙한 민주사회에 살고있다면 국민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괘씸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은 ‘괘씸한 자들’이 왜 욕을 먹으면서까지 국적을 포기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들의 문제제기는 현재 우리 국민이 느끼는 사회적 병폐에 대한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괘씸한 자들’은 무슨 깡으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조용히 군대에서 2년만 썩고(?) 오면 되는 길을 포기했을까. 국적포기가 병역기피 때문이라면, 역으로 우리나라의 군복무방식이 수 많은 국적포기자들을 양산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몇개월 전 부하에게 인분을 먹였다가 적발된 장교의 이야기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군대에는 과거 일제의 군국주의식 잔재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고, 합법을 가장한 횡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다. 이와 함께 군에서 발생한 다수의 문제는 군인들의 사기를 고려해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이쯤되면 군복무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을 편가르기 전에 군복무 제도 자체에 태클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군복무제도를 투명화하고, 공정성을 높이는 것과 싸구려 인력 다루듯 하고 있는 군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과연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킬까.

▲‘국적포기 이유=병역 기피’라는 등식에 대해서도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몇달 전 나는 토론토 공과대학을 마친 뒤,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의 생활을 준비하는 한 형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그 형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바둥바둥 힘썼지만, 학벌, 위계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철저히 소외당했다. 나중에는 주변사람들에게 당시에 한창 인기였던 생식까지 판매하다가 자기 모멸감이 들었는지 그마저도 그만두고, 결국 한국을 떠났다. 내가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그 형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중국적을 이용해 병역을 기피해 온 얌체족들의 행태가 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괘씸한 자들’을 두고 응징하기 전에, 그들이 왜 한국을 떠나는지, 우리 사회가 비이성적인 부분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 분단된 조국 상황에 ‘국갗라는 단어가 가지는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국갗라는 하나의 틀에 모든 개인을 가두어 놓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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