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처럼 ‘속도’에 탐닉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바뀐 신호등에 조금만 지체해도 자동차 경적을 울려대고, “요즘 너무 바빠”라는 말은 마치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의 인사말처럼 사용된다. 바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해진다.

오죽했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배운 첫 마디가 “빨리 빨리”라고 했겠는가? 이런 속도는 우리 주변의 환경도 급격하게 바꿔버린다. 신촌이라는 공간도 그렇다. 락 카페, 노래방, 비디오방, 피씨방, 커피 전문점 등등 유행이 지나갈 때마다 신촌은 새로운 옷을 벗고 입는 것 같다. 2~3달 정도만 이곳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면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신촌에서 공간은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고 있다. 그만큼 빨리 변해가는 것이다.

빠른 변화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내가 낯선 공간에서 ‘타인됨’을 느끼는 것은 그 공간과 관련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익숙한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얼굴 한번도 보지 못한 동문들을 친밀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서로를 엮어주기 때문 아닐까? 언젠가 동문회보에서 읽은 글에 따르면, 동문들끼리의 결혼이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만 알고 있다고 여겼던 학교 주변 작은 카페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서로의 친밀감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이란 우리의 기억을 매개하면서, 서로를 연결시키기도 하고 분리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대학만이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내가 입학할 당시와 비교해 봐도, 지금의 학교는 너무 달라져 있다. 둘러앉아 놀던 그 많은 잔디밭들은 다 사라졌고, 점심 먹고 가끔씩 산책하던 흙길도 새로운 건물이나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오늘도 계속해서 쓸모없는(?) 공간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또 없어지곤 한다. 그래서 좀 더 편안한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중한 추억을 빼앗기는 것 같아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만큼 학교라는 공간이 낯설어지기도 한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마치 길을 걷는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할 때 자신의 발걸음을 늦추게 되고, 반대로 무언가를 잊어버리고자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빨리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의 물음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던져본다. 우리 시대가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어서 자신을 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인가? 공동체의 파괴나 인간 소외라는 현상도 혹시 우리 사회를 끌어가는 속도와 관련된 것은 아닌가?

오래 전 배낭 여행을 가서 보았던 유럽의 도시들이 생각난다. 백년도 더 된 건물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도시 곳곳에서 ‘기억’의 흔적들을 보면서 느꼈던 무게감을… 그리고는 혼자서 상상해 본다.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우리 사회의 이 엄청난 속도를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속도’의 힘 앞에서 ‘기억’의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을까? 쓸데 없는 공간의 ‘쓸모’를 설득할 수는 없는 것인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만이라도 불가능할 것일까?

/사회학과 이승훈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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