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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사라진 손바닥>의 나희덕 시인흙에서 태어난 시인, 따뜻한 손길을 내밀다.
  • 최종혁 기자
  • 승인 2005.05.02 00:00
  • 호수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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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찾아온 봄은 캠퍼스 곳곳에 화려한 꽃을 피우며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봄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린 백목련은 그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생동하는 자연에 마술 같은 바람이 스치면 봄꽃들이 피어나 파란 하늘을 물들인다. 따스히 내리쬐는 햇살을 가득 머금고, 백목련보다 더 단아한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을 만났다.

자연을 사랑한 시인

“연대를 떠나는 것 보다 연대 뒷산을 떠나는 게 더 아쉽다”며 퇴임사를 하던 시인 정현종 교수(퇴임·국문학)의 말처럼 연대 뒷산은 정교수에게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교수의 애제자 나희덕 시인에게 역시 학교 뒷산은 학창시절 빼놓을 수 없는 안식처였다. “그냥 몇 시간씩 앉아서 자연을 느끼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연을 사랑한다. 이맘 때 쯤 겨울 내내 얼었던 흙이 따스한 봄기운에 사르르 녹는 것을 학교 뒷산에서 보았다는 시인은 그 광경을 대학교 2학년 때 시에 담아낸다. 그 작품이 바로 훗날 그가 시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한 등단작 「뿌리에게」이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아 나의 사랑을

“뒷산 오솔길을 거닐다가 정현종 선생님과 자주 마주쳤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나희덕 시인. 한명이 걸어가기에도 좁은 길에서 스승과 제자가 마주쳐 멈칫멈칫 거렸을 상황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느날 뒷산에서 족제비와 꿩이 피를 흘리며 싸우던 모습을 보았다는 시인은 “싸움은 이미 숲을 떠나고 고요해졌지만 내 안에는 아직까지 그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고 그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서 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지치고 힘이 들 때면 학교 뒷산이 생각났다”며 스무 살 때의 마음을 회복하고 싶어서 졸업 후에도 가끔씩 학교를 찾아 왔었다고 이야기했다. 인위적인 것을 뒤로 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시인의 시를 키워온 것이다.

시인이 되기까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나희덕 시인은 정교수와의 만남과 다양한 학회 활동이 시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현종 선생님은 사물을 향해 자기를 열어 볼 수 있는 법을 제시해 주셨다”며 시인이 정교수로부터 많은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을 전했다. 또한 “민중 신학, 사회과학, 생태주의 등에 관한 세미나가 거의 매일 있었다”는 시인의 말에서 그가 학창시절 얼마나 많은 심미적인 작업과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시인은 성석제, 원재길, 기형도, 이영준 등과 함께 연세문학회 활동을 했다. 당시 서로의 글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시인은 그러한 쓴소리가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었고, 깨치기 힘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연세문학회 활동이 문학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도 만났으니 시인은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연세문학회에서 맞은 것이다.

“학교를 떠나 교사생활을 할 때는 혼자 글을 쓰는 게 더 막막했다”는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는 공유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그는 “시인이 되면 나의 시를 읽어줄 독자가 다섯 명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등단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소박함으로 시인의 삶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 하는 것처럼/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시집 『사라진 손바닥』에 실린 현대문학상 수상작 「마른 물고기처럼」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샘이 마를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지만 서로에게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처럼 최근 나희덕 시인은 이전까지 주로 써왔던 가족사나 유년기를 다룬 서정시를 넘어 ‘존재의 인식’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시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제 관심이 그 쪽으로 옮겨 간 거죠”라며 간단하게 대답하지만 시인의 다정다감한 손길로 하찮을지도 모르는 존재들을 쓰다듬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시가 추상화될 수도 있지만 시인은 “고민의 추상도를 높여가더라도 구체적 대상을 통해 풀어나간다”며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음을 말했다.

또한 그러한 세계가 진부하지 않거나 허황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시인의 시는 대립되는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소멸과 생성, 빛과 어둠 등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함께 끌어 안는다”는 시인의 말과 네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의 제목처럼 빛도 어둠도 아닌 그 경계 속에 숨쉬고 있는 것들을 시인은 함께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오직 내 마음의 가장 빛 되지 않은 것으로 살겠습니다

시인이 대학에서 처음 쓴 시 「들에서」의 한 구절이다. 그는 지금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 대학의 교수, 대학원의 학생 등 여러 위치에 서 있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시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장 중심에 두고자 한다. “시를 쓰면서 삶이 바뀌었다”는 나희덕 시인. “시인으로서의 삶이 힘들지만 문학의 부림에 따라갔다”는 그는 천상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최종혁 기자  bokusip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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