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는 ‘구조조정’의 격랑을 맞고 있다. 정부가 50개 국립대학을 35개로 통폐합하고,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대학구조조정 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출발점은 국립대학 간 통폐합이지만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국·공·사립을 불문하는 전체 대학들 그리고 각 대학 내 전공 간 통폐합까지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이다.

현재 대학의 숫자와 각 대학 내 유사 중복 전공들이 과잉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대학가는 어떤 식으로든 구조의 변화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구조조정 정책은 올바른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일까?

교육 분야에서 모든 개혁은 교육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소하고 교육조건을 최적화하여 궁극적으로 그것의 발전과 진보를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대학개혁 정책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한국 고등교육의 본질적 문제는 대학 수가 많다는 것보다 창조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바람직한 고등교육이 굳이 대형 종합대학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영역에 따라 때로는 소규모의 분화와 분산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현재의 대학 숫자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기초학문 교육’, ‘응용학문 교육’, ‘예체능 교육’, ‘직업전문 교육’의 각 영역이 고유한 성격과 필요에 맞게 구조화 되지 못한 채 한 통으로 섞여서 모든 대학 그리고 모든 전공이 닮은꼴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교육체계를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숫자상의 통폐합에만 진력하는 것은 요란한 진통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으로 거두게 될 성과는 매우 불투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개악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아마도 현재 추진되는 구조조정의 결과는 숫자와 규모의 조정만 이루어진 닮은꼴 대학들의 존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구조 내의 조정이 아니라 구조 자체의 과학적 개혁이다.

한국의 고등교육이 당면한 우선적 개혁 과제는 직업전문교육과 기초학문교육의 분리된 체계를 갖추고, 각 체계의 고유한 필요를 최적화해내는 일이다. 교육 영역마다 필요한 구조와 규모와 경쟁력의 조건이 다른데 하나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잣대와 하나의 목표로 상대화하여 구조조정을 한다는 일은 마치 세탁기 안에 흰 빨래와 유색 빨래를 섞어 돌리거나 밥과 죽을 한 그릇에 담아 상을 차리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 정책은 본질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우선 과학적인 고등교육 체계 자체의 새로운 구조화의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과 같은 대학원급 직업전문교육 기관으로의 진로와 더불어 단순 기술숙련이 필요한 학부 수준 또는 고등학교 수준의 직업전문교육 기관을 직업 성격과 교육 내용의 조건에 따라 최적의 체계로 재편해야 할 것이다. 기초학문 교육과 응용학문 교육도 각 영역의 특성에 따라 국가차원에서 필요한 규모와 전략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그 뒤 전체적인 구조의 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에 맞추어 각 대학이 스스로의 조건에 맞는 고유한 비전을 채택하여 변화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주경복 한국교육정책이론 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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