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이웃들의 악행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포악한 이웃은 그와 똑같은 이웃을 생산한다’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급기야 일본 문부성의 역사, 공민교과서 검정 개악으로 인해 전면적 반일 감정 확산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연일 계속되는 ‘충격’보도에 씁슬해하다 문득 적나라한 폭력묘사로 논란이 됐던 영화 ‘배틀로얄’을 떠올렸다. 살아남기 위해 반친구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처절한 전쟁터에서 주인공 나나하라 슈야는 가혹한 현실을 인정치 않고 친구들과 힘을 모아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그러나 악랄한 카즈오가 겨눈 총구에 친구들은 하나씩 쓰러져가고 결국 슈야 역시 그 싸움에 끼여들어 카즈오를 잔혹하게 죽이고 만다.

개인적으로 이번 독도-역사분쟁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반응에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인기리에 판매되던 일본 상품은 갑자기 홈쇼핑 셔터에서 내려와야 했고, TV 토론에 출현한 일본인 패널은 발언에 앞서 신변의 위협을 걱정해야 했다. 평소 티격태격하던 중국네티즌의 호칭은 하루아침에 ‘되놈’에서 ‘친구’로 돌변했다. 일본측이 ‘원죄’를 진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마치 ‘민족’이란 이름으로 언제나 적을 심판할 준비를 마친 전위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군국주의적 광기로 무장한 상대방을 인도주의적 호소만으로 변화시킬 순 없다. 일본우익의 군국주의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패권주의에 바탕한 것으로 이를 정면으로 부수기 위해선 사실 일본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일본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대규모 사이버 외교전쟁 등은 비록 지나치게 극단적인 면이 있으나 일본 정부에 실질적인 손해를 가할 수 있어 일본 우익들에게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광기에 젖은 이웃을 이기기 위해 우리도 광기에 젖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슈야가 카즈오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렇게 해서 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일본(또는 중국)과 싸우는 이유는 동아시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아가서는 ‘대마도는 우리 땅, 간도도 우리 땅’이라며 힘센 우리의 이웃들이 이제 그만 고집을 버릴 때라고 부르짖는다.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의 영토와 국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에 과연 그리 중요한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의 도발에 대해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한다. 힘을 갖춰야 당하지 않는다’는 모종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힘을 갖겠다는 것은 결국 그들과 국력경쟁을 벌여 우리도 그들처럼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영토를 빼앗고 역사를 왜곡하는 데는 강한 국력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국제평화를 추구하는 데 굳이 강한 힘이 있을 필요는 없다. 힘센 이웃들의 악행에 맞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세계화가 세계시민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늘날 국가 단위의 경쟁과 배타적 국익추구는 더욱 일반화됐고, 이는 국력만큼 의식수준이 발달하지 못한 동아시아 3국에선 특히 심하다. 단지 우리의 이웃들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이러한 갈등 속에서 우리가 부르짓는 평화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당장 독도-역사분쟁만 하더라도 우리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무차별적 공세에 당황해 우리의 주장에 반감을 갖게 될 소지가 크다. 그들을 비난하고 공격하기에 앞서, 우리의 평화의지를 설명하고 대화의 제스처를 취하는 매너가 필요하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우리와 이웃들의 미래를 ‘배틀로얄’의 비극으로 물들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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