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12월 30일 나는 ‘비엣남 에어라인’ 여객기에 몸을 실은 채 베트남 상공을 날고 있었다. 무심코 창 밖을 내려다보던 순간 나는 전율했다. 짙은 녹색의 대지를 쓰다듬는 메콩강의 물결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저 땅에서 살육의 전쟁이 멈추질 않았다니… 그 날 목격했던 그 넉넉한 물줄기의 광휘와 생명력이 오래도록 시린 가슴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3주간의 일정이 특별했던 이유를 꼽자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그곳이 베트남이었다는 점, 하나는 봉사활동을 하기위해 갔다는 점, 마지막으로 단체 활동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베트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태평양아시아협회에 지원했을 당시에는 집 지어주기, 어린아이 돌봐주기, 음식 제공하기 등 노력봉사 위주의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봉사활동은 필요 없을 만큼 발전된 호치민 씨티에서 실제로 우리가 한 활동은 한국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알리기였다. 한국어 교육, 전통 혼례, 사물놀이 공연 및 교육, 한지 공예, 한국 음식 페스티벌 등 우리의 활동은 노력봉사보다는 문화 교류에 가까웠다. 하고 싶었던 봉사활동과는 거리가 멀어 아쉽기도 했지만 한국학과 학생들에게, 그리고 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올바로 심어주고 제대로 알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물론 베트남에서 고생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입에 안 맞는 음식 때문에 배가 고파도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한국과 다른 교통체계로 무서워하며 길을 건너기도 했다. 더러운 화장실에 갈 때에는 코와 입을 꼭 막고 참아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진솔한 표정을 보면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특히 일정이 끝나고 문화 탐방으로 가게 된 메콩 델타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했다. 온갖 쓰레기와 배설물까지도 버리는 메콩강물에 그들은 식기구를 씻는 것은 물론이고, 세수 샤워도 하고, 음식을 만들 때에도 그 물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도시인의 스트레스나 세상살이에 쫓겨 사는 초조함이 없고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따뜻하고 맑은 물에 몸을 씻고 깔끔한 옷을 입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

각박하게 변모하는 지구촌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듯 베트남 사람들의 담박한 가슴도 머지않아 모질게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슴 따스한 사람들이 베트남을 지키고 있었다.

/신소희 (경제·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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